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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일본 때리면서도 ‘반일 공조’ 않는 이중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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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4돌] 동북아 지각변동

② 한-일 관계 재정립과 각국의 셈법

전면화한 한·일 갈등 상황에 매체들 아베 맹비난

남북연대 제안은 하지 않고 논평자 머물러

미국과 협상에 집중…“때가 되면 일본과 정상회담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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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처’로 전면화한 한-일 갈등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떻게 대처하려 할까? 두 갈래 길이 앞에 있다. 하나는 민족공조·남북연대, 다른 하나는 한-일 갈등에서 북-일 관계 정상화의 실마리를 찾는 길이다.

북쪽은 반일·반미·통일을 국가 정체성의 고갱이로 삼아온데다, 틈만 나면 남쪽에 “우리 민족끼리”(6·15 남북공동선언), “민족의 리익을 우선시해 그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원칙”(<노동신문> 7월16일)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반일 민족공조, 남북연대’는 북쪽에 선택이 아닌 필수 경로에 가깝다. 다만 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최고권력을 신화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여서 현실 정책과 같진 않다. 북쪽은 늘 ‘항일’을 외치지만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일본과 관계 정상화의 길을 모색해왔다. 외교 고립 탈피, 경제 재건의 물적 기반 마련이라는 체제의 절박한 과제와 맞닿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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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선택’을 가늠할 실마리는 북쪽 매체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최고 권위의 ‘필독 매체’인 <노동신문>과 대표적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연일 아베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불매운동 등 한국 사회의 동향을 상세하게 전한다. <노동신문>은 7월10일치에서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조처’를 북쪽 매체로는 처음으로 다루며, “우리 민족은 천년숙적 일본의 죄악을 반드시 천백배로 결산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아베 정부의 의도 분석은 <조선중앙통신> 논평(7월19일)에 잘 정리돼 있다. ①“조선반도 평화 기류 파괴” “군국주의 야망 실현에 유리한 정치 환경 마련” ②“남조선 경제 타격” “친일매국세력 재집권 길 열어주기” ③“상전(미국)을 자극해 조선반도 문제에서 밀려난 저(일본)들의 이익을 중시받자는 타산” ④“우익세력 결속, 헌법개정 등 숙망(오랜 바람) 실현” 따위다. 그러곤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하며 그것이 없이는 절대로 평양행 차표도 쥘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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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기조가 강경하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북쪽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나 인터뷰 등 이 문제와 관련한 당국 차원의 공식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북쪽은 남쪽에 당국 차원의 공조도 제안하지 않았다. 요컨대 한-일 갈등 국면에서 김 위원장의 초기 선택은 ‘행위자’가 아닌 ‘논평자’에 가깝다. 아베 정부의 행태를 맹비난하되, 남북 당국 차원의 공조는 추진하지 않는 ‘김정은식 이중궤도(투 트랙) 전략’이다.

북한 읽기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북쪽은 <노동신문> 등으로 일본을 강하게 비판하다, 때가 되면 일본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다만 짧은 시간 안에 북-일 사이에 뭔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김 위원장은 3차 북-미 정상회담 조기 성사에 외교 자원을 ‘다 걸기’ 하고 있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동북아 역학 구도 탓에 북-미 관계의 진전 없이 북-일 관계 개선 시도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역사의 교훈도 무시할 수 없다.

북-일은 ‘조선노동당·자유민주당·일본사회당 3당 공동선언’(1990년 9월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사상 첫 북-일 정상회담과 ‘평양선언’ 채택(2002년 9월17일)으로 관계 정상화를 시도했으나 각각 이른바 ‘제1차 북핵 위기’와 ‘제2차 북핵 위기’ 발발로 무산됐다. 당시 일본 외무성 간부가 “우리가 움직이면 미국은 반드시 제지하려 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한탄한 까닭이다. 김 위원장 집권기에 ‘납치 문제 재조사’와 ‘제재 일부 해제’를 맞교환하는 ‘스톡홀름 합의’(2014년 5월29일)로 관계 정상화를 다시 시도했으나, 역시 북-미 갈등의 격화로 무산됐다. “대북 제재 강화”를 입에 달고 사는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 논의”라는 전제조건을 접고 “조건 없는 만남”을 제안(5월2일 <산케이신문> 인터뷰)했지만, 김 위원장은 무반응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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