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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양성희 논설위원이 간다] 세계적 위상 K팝, 산업 마인드는 못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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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의 추락, ‘프듀’ 사태 등

케이팝 산업 내 잇딴 잡음

국내팬, 해외팬 문화갈등도

커진 덩치만큼 재정비 필요



케이팝 3.0 시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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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방탄소년단의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를 앞두고 런던 피커딜리 서커스 전광판에 걸린 팬 메시지 영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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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세계 제패로 열린 K팝 3.0시대. 한·일 관계가 경색된 와중에도 K팝 인기는 굳건하다. 방탄소년단은 일본 싱글 ‘라이츠/보이 위드 러브’가 출하량 100만장을 넘겨 지난주 일본레코드협회로부터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 한국 가수로는 물론 외국 남성 가수로도 최초다. 트와이스 역시 싱글 8장 연속 플래티넘(25만장) 인증 기록을 세우며, 일본 내 건재를 과시했다.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아들 매덕스는 최근 연세대 진학을 결정하며 “K팝 팬이라 한국 대학을 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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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도박 혐의로 입건된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전 대표(왼쪽)와 승리. 두 사람은 성매매 알선 혐의도 받고 있다. [중앙포토]


한편에선 이런 K팝의 위상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들이 잇따른다. 승리의 ‘버닝썬 게이트’는 아이돌 스타들의 성폭력과 마약 범죄에 이어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입건으로 이어졌다. 기왕의 성매매 알선 혐의에 상습 도박 혐의까지 더해졌다. 한류의 간판 YG가 향락산업, 성범죄, 부패 커넥션과 연결되며 어디까지 추락할지 짐작도 안 되는 상황이다. ‘국민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엠넷(Mnet) 오디션 ‘프로듀스X 101’은 시청자 문자투표 조작 의혹으로 검경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K팝 팬덤 안에서는 국내 팬과 해외 팬 사이 문화적·인종주의적 갈등과 분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K팝 산업의 규모와 영향력은 유례없이 커졌지만, 아직 산업은 미처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비하지 못하고 낡은 연예비즈니스의 틀을 벗지 못해 빚어진 ‘과도기적 참사’란 지적이 많다.

커지는 해외시장, 국내 팬은 찬밥?

최근 방탄소년단의 국내 팬인 ‘K 아미’들이 뿔났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팬 플랫폼을 통해 국내외 아미를 통합하고 팬클럽 가입 장벽을 대폭 낮춘 것이 사달이 났다. 그간 어렵게 팬 활동을 해온 국내 원조 팬들을 홀대하고 해외 팬만 우대한다는 일부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가뜩이나 공연장 등에서 국내 팬은 통제, 해외 팬은 배려하며 차별한다는 피해의식이 팽배한 참이었다. 한국 아미를 글로벌 아미와 통합하면서 일본만 독자적 팬클럽을 놔둔 것도 특혜란 지적이 나왔다.

사실 월드 와이드 수퍼스타 방탄소년단은 이미 활동의 중심축이 해외로 옮겨졌다. 지난해 8월부터 4월까지 월드 투어 ‘러브 유어셀프’ 기간 동안 한국에선 2번, 일본에선 9번의 콘서트가 열렸다. 이달 컴백한 세븐틴도 콘서트 3일을 제외하고는 월드 투어에 돌입하는데 일본 공연만 10번 잡혔다. 해외에서 K팝 스타들의 몸값이 치솟고 한국 공연보다 개런티가 두 배 이상이니 소속사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시장이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러브 유어셀프’ 미국·영국·프랑스·브라질 스타디움 공연 수익은 934억 원에 달한다.

엑소 팬클럽 ‘엑소엘’도 12월 일본 미야기현 공연 일정에 제동을 걸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지역과 가까워 멤버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그 배경에도 일본 팬덤을 특별대우한다고 생각하는 국내 팬들의 억울함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SM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캐피톨 뮤직 그룹(CMG)과 손잡고 올 하반기 공개할 ‘슈퍼엠’에 대해서도 국내외 반응이 엇갈린다. 미국 시장을 노리며 샤이니의 태민, 엑소의 백현· 카이, NCT의 태용·마크 등으로 구성한 어벤저스 7인조다. 벌써부터 ‘게섯거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각 팀의 에이스들을 모아놓았는데 해외 팬들은 반기는 반면, 국내 팬들은 ‘실패한 NCT 살리기에 선배들을 동원한 억지 조합’이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국내-해외 팬덤 간 인종주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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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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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외 팬덤 간 문화적·인종주의적 갈등이다. 아이돌의 얼굴을 보정(뽀샵)하는 국내 관행을 두고 해외 팬들이 ‘화이트워싱(whitewashing·유색인종의 얼굴을 백인으로 바꾸는 인종차별의 하나)’이라고 비판하거나, 반대로 한국 팬이 해외 팬들을 ‘외퀴(외국바퀴벌레)’라고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K팝 그룹들이 늘면서 동남아 출신 멤버에 대한 국내 팬들의 인종차별적 언사가 물의를 빚기도 한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획사들은 이미 많은 외국인 멤버를 기용하고 한국인 없는 K팝 그룹까지 만들고 있는데, 일부 수용자들이 외모에 기반한 인종적 혐오 발언을 하고 있어 문제”라며 “동아시아 외부에서 한류스타들이 갖는 긍정적 힘의 기반이 반인종주의적 메시지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으로 상징되듯 다양성, 소수자성을 무기로 성공한 K팝이 인종주의에 발목 잡히는 이율배반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책 『BTS와 아미 컬처』의 저자인 이지행 박사도 “방탄소년단도 국내외 팬덤 간 문화적 오해와 갈등이 있지만 ‘우리가 방탄의 얼굴’이라는 팬덤의 자정력과, 아미 팬덤 안에서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YG의 추락, 그리고 ‘프듀’ 사태

자고 나면 한 건씩 터지는 YG 스캔들과 함께 YG가 제작에 참여한 2018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YG전자’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승리가 YG전략본부장으로 나오는 ‘YG전자’는 가상의 상황이긴 하지만 “약발YG” “마약을 안 하고 룸살롱에 안 가는 클린YG” 등을 웃음 코드로 썼다. 아무리 B급 예능이라고 해도 당시 세간의 의혹을 희화화할 만큼 윤리의식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YG가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강한 패밀리 의식으로 성공했지만, 양 대표 1인 의존도가 심한 옛날 스타일로 운영돼온 게 한계”라고 지적했다. 비약적으로 커진 회사의 위상과 규모에 맞는 시스템 구축에 실패한 사람 중심, 가족주의 경영의 한계란 얘기다. 그는 “이제는 승리 사건의 피해가 승리나 회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승리 라면집에 투자한 일반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기획사들도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감,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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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문자투표 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 [엠넷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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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듀’ 사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온다. ‘프듀’는 공정성에 민감한 젊은 팬들이 방송사의 투표조작 의혹에 법적 대응을 한 최초의 사건이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소비자 중심주의, 팬덤 위상 강화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사건이자, 한편으론 K팝 산업 내부 인력들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 수용자의 변화에 얼마나 둔감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글로벌해진 K팝의 외양과 달리 산업의 태도는 아직 세계화가 덜 된 채 그저 돈벌이로만 접근하는 문제가 명명백백 드러났다”는 진단이다.

‘프듀’가 안 그래도 과열된 K팝 팬덤을 더욱 극단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K팝 팬덤의 특징인 양육자 모델(팬이 돈과 시간을 들여 스타를 응원하며 키워내는 방식)을 ‘극성 헬리콥터맘’이란 극단으로 끌고 갔다는 뜻이다. 스타와 팬 사이 거리가 먼 해외와 달리, K팝 팬덤은 양자 간 친밀한 소통을 내세우고, 그만큼 팬들의 충성도도 높다. 밤새운 음원 스밍(스트리밍), 시상식 투표, 포탈 실검이나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총공 등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며 아이돌의 순위를 올려주거나 사회적 화제를 만들어내는 ‘노동하는 극성맘’이 K팝 팬덤의 정체성이다. 스스로 스타와 팬의 관계를 ‘새끼’와 ‘앰(엄마)’이라 칭하기도 한다.

‘프듀’는 여기서 나아가 시청자가 투표로 당락을 결정하며 생사여탈권을 쥐는 방식으로 팬덤의 과몰입, 과당경쟁을 촉발한다. “내가 뽑은 아이돌이니 내 마음대로”라는 식의 과도한 개입을 낳기도 한다.

굳이 순위가 의미 없는데도 팬덤 간 기 싸움하듯 각종 기록 줄 세우기 경쟁을 하거나, ‘닥치고 지지’라는 폐쇄적인 아이돌 팬덤 문화가 여타 팬덤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선 문화적 심각성도 있다. 이규탁 교수 역시 “팬의 위상 강화는 중요하지만, 팬덤의 과열과 월권은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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