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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죽기 직전까지 삶에 충실하라… 그게 '나잇값'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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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뇌과학자 이시형 박사, 에세이 '어른답게 삽시다' 펴내

"나이 들어 위축되지 않으려면 자존감과 정신적 자립이 필요"

"평생 염색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머리엔 흰 머리카락보다 검은 머리카락이 많았다. 젊어 보인다고 하자 잠시 말이 없던 뇌과학자 이시형(86) 박사는 "이래 보여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서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등산을 해도 꼭대기까지 못 올라가지요. 당연한 거예요. 서러워만 할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나잇값' 하는 겁니다."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인 그는 최근 나잇값 하고 싶은 어른들을 위해 에세이 책 '어른답게 삽시다'(특별한서재)를 썼다.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들기도 한 이 박사는 '늙어서 효(孝)를 기대하면 돌아오는 건 자칫 서러움'이라며 정신적 자립을 권하는가 하면, '나이가 든다는 건 숫자가 보태지는 만큼 깊어지는 것'이라며 따뜻하게 다독이기도 한다.

그는 "어른다움을 헤매는 세상에서 정신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이 듦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서울 은평구 세로토닌문화원에서 만난 이시형 박사는 “초고령 사회에서 국가가 부담하는 노인의료비도 만만치 않다”며 “짐을 지우지 않도록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것도 나잇값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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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나이가 들어 갑자기 위축되고 열등감에 빠져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많이 본다. 삶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내가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과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그는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 되면 신체 능력과 기억력이 감퇴하는데, 예전같이 빠르고 정확하지 못한 자신에게 답답해하기 쉽다"고 했다. 결국 마음의 유연성이 떨어져 조급해지고 쉽게 화를 내게 된다. "노화를 받아들이되 정신적으로 젊게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은 세월을 비켜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죽는 순간까지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뛰는 것"이다. 그가 '일'을 책의 화두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퇴를 시작으로 우울감이 온다. 사회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정체성을 무너지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이 주는 희로애락은 감정에 진폭을 만들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은퇴를 마주하고 있다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이후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죠."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쓸쓸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힘, 정신적 자립이 필요하다. "노인 우울증 뒤에는 자립의 실패가 있죠. 평생 가족과 사회를 위해 밖으로만 눈을 돌리고 살았으니 이젠 자신에게 집중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가벼운 설렘'을 느끼면 좋다. 그는 손으로 자전기(自傳記) 쓰기를 권했다. "쓰는 순간 뇌 여러 부위에 산재된 기억 회로가 작동한다. 지적 쾌감은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은퇴를 고려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웰 다잉'을 '웰 리빙'으로 정의했다. "열심히 살아야 자신 있게 죽을 수 있다"며 "그걸 젊은이들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온 힘을 다해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며 잠자듯 세상과 이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로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믿습니다. 미련없이 충실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나잇값' 하는 것이 아닐까요."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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