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첫 공개 언급한 트럼프… 관여하겠다는 의미?

트럼프 “문 대통령 韓·日갈등 관여 요청”/ 볼턴의 한·일 방문에 이목 집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로 불거진 한·일 갈등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문재인 대통령의 관여 요청이 있었다’는 것과 ‘한·일 양쪽의 요청이 있으면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본이 내정간섭적인 발표까지 하면서 양국 갈등에 불을 붙이는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요청이 있어야 미국도 관여할 것이라는 설명이라서 ‘한·일 당사자 해결’이라는 기본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한·일 방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문 대통령 美에 韓·日갈등 관여 요청”...日, 내정간섭적 발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는 백악관 행사에서 취재진이 한·일 갈등에 대해 묻자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서 “사실 한국 대통령이 내가 관여할 수 있을지 물었다”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정부가 ‘대미 설득’에 총력전을 벌인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관여 요청도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와 외교부는 물론, 산업부 인사들까지 이번 조치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미국을 잇따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재진 질문에 답한 것이지만 한·일 갈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사태 악화를 원치않다는 의지 표명일 수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한국의 대외무역법 등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며 ‘내정간섭’적 발표까지 하면서 양국 갈등 해결을 위한 타협점이 점차 흐릿해지는 상황이다. 국가간 관계에서 외국 정부가 다른 나라의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의 내용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에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고 강제징용이라는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통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일본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당장 한·일 갈등 개입엔 부정적?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어떤 경로로 문 대통령의 관여 요청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청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발언 내용을 유추해보면 한·미 정상간 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관여 요청이 있었다고 공개하면서 “(문 대통령에게) 얼마나 많은 사안을 관여해야 하느냐, (문 대통령을) 도와서 북한(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아주 많은 일들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한·일 갈등에 있어서 미국의 관여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가 읽힌다.

그는 이어 “하지만 그(문 대통령)는 여러 마찰이, 특히 무역과 관련해 진행 중이라고 했다”면서 “일본은 한국이 원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고 그는 내게 관여를 요청했다. 아마도 (한일 정상) 둘다 원하면 나는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한·일 양측이 갈등 해결의 당사자라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현종 2차장은 한·미·일 3자 협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은 적극적인데 일본이 소극적이라서 열리지 않을 것 같다고 소개한 적 있다. 3자 협의에 소극적인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서달라고 요청할 리 없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일본과 한국 사이에 관여하는 것은 풀타임 직업 같은 (힘든) 일”이라며 “그러나 나는 두 정상을 좋아한다. 문 대통령을 좋아하고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여러분이 알지 않느냐. 그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거기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그들이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은 갈등이 있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역갈등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미 중재를 요청했지만 아베 총리의 요청이 없는 상황이라서 양국 갈등 양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日 ‘호르무즈 파견’시 美 역할론 복잡해질듯

당장 다음주에 한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하는 것으로 전해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일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볼턴 보좌관의 일본행은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민간선박 보호 연합체 구성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을 만나 이 연합체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인데, 자위대를 파견하는데 법적 근거가 빈약하고, 이란과의 우호관계 손상을 우려해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요청할 경우 거절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은 볼턴 보좌관이 일본을 방문하면 한·일관계의 현재 상황을 설명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사실상 일본이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 요청에 동의할 경우, 한·일 갈등 양상에서 미국의 관여를 원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또다른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도 같은 요청을 할 경우,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