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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애인 있어?" "어디 다녀?" 그 이상 묻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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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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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장은 소속 부서 대리에게 "술자리를 만들어라"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면서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놨다.

팀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B과장은 김 대리가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최근 애인이 생긴 것이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 등 연애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이 사원은 그 순간 불편했지만, 이후 B과장은 성적 언동으로 볼 만한 질문이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A씨와 B씨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 대상일까. 고용노동부가 17일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현장 안착 추진' 자료에 따르면 A씨는 괴롭힘으로 인정되지만 B씨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반드시 괴롭힘으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경우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이다.

다만 당사자 간 관계, 행위 장소·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 반응, 행위의 내용·정도, 일회성·계속성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는 것이 고용부 설명이다. 최태호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통상적으로 사회적 통념상 인정되는 간단한 사생활을 묻는 행위 자체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B과장이 이후 김 대리에게 성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거나 연애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괴롭힘 방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업무 외 일을 부여할 때도 모두 괴롭힘 방지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을 때 담당자가 연차휴가라면 C팀장이 과내 기타 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에게 서류 작성과 야근을 요구할 경우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업무상 필요성, 기존 업무와의 연관성 등을 토대로 볼 때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적정 범위 내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신입사원이 들어오자 회의실로 따로 불러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D부장은 괴롭힘 방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직급상 우위인 데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최태호 과장은 "특정 학교 출신 사원이 다수인 직장에서 다른 학교 출신 사원에 대한 따돌림도 우위 관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업무에 성과를 내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독려 또는 질책은 원칙적으로 적정 범위 내 행위로 볼 수 있다.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지점장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매일 행원들의 성과를 점검하는 은행 지점장 E씨는 괴롭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친목을 위해 모바일메신저 단체채팅방에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종종 글을 올리며, 팀원들에게 대답이나 피드백을 요구하는 F부장의 행위는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사적 공간에서 발생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 내용에 따라서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첫날 MBC 아나운서들의 '1호 진정'을 포함해 모두 9건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다만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사업장이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징계 등의 내용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했다. 고용부는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장 25일의 시정 기간을 줄 방침이다. 시정 기간에도 취업규칙을 제·개정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MBC 사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최태호 과장은 "언론에 공개된 업무 미부여라든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사내 전산망 (접근)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항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개연성이 굉장히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날 고용부가 배포한 자료 내용을 읽다 보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온다. 여전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아 혼란스럽다는 지적이다. 고용부가 예외 상황을 언급하면서 자료에서 사용한 '특별한 사정' '사회통념' '적절한 환경'이란 단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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