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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송혁기의 책상물림]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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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말과 행동이 갑자기 달라졌음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흔히 ‘표변(豹變)했다’고 한다. 이 말은 본디 표범이 가을에 털갈이하는 것처럼 허물을 고쳐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좋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원 출처인 주역 ‘혁괘(革卦)’에서는 ‘혁면(革面)’과 대비되어 사용되었다. 겉 표정만 바꾸는 혁면과 달리 표변은 전면적인 변혁을 뜻한다.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이 둘은 모두 ‘대인호변(大人虎變)’의 결과다. 통치자가 바르고 알맞은 도리로 개혁을 단행하면 천하의 모든 사리가 호랑이 무늬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드러난다. 그 영향으로 선량한 이들은 온전히 교화되고 이기적인 이들조차 적어도 겉으로는 교화를 좇는 사회가 된다는 맥락이다.

주역의 순서상 혁괘는 정괘(井卦)의 다음에 온다. 우물은 그대로 두면 더러워지고 수시로 바꿔야 청결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혁괘로 이은 것이라고 전한다. 혁괘는 연못 아래에 불이 있는 형상이다. 물은 불을 사그라들게 하고 불은 물을 말려 버리므로 서로 치명적이다. 게다가 위로 치솟는 불이 아래에 있고 아래로 흐르는 물이 위에 있으므로 둘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서로가 서로를 변혁시키지 않을 수 없으니 갈등과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이 바름을 지키는 꼿꼿함이다. 혁신은 도처에서 강하게 버티는 관성들을 하나하나 누그러뜨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한 치라도 바름이 흐트러지거나 때가 차기 전에 성급하게 꺾으려 들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된다.

혁신을 말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술의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술의 혁신이 다시 제도와 생활의 혁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변화의 속도가 높고 폭이 클수록 혁신의 요구도 거세진다. 정치권에서도 역시 언제부턴가 혁신이 화두다. 정부는 창업과 융·복합의 혁신을 강조하며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걸었고 엊그제 당대표에 오른 이는 문화혁신을 키워드의 하나로 삼았다. 공천혁신으로 살 길을 찾는 당도 있다. 그러나 어느 층위에서 말하든 간에, 혁신은 본래 위험하다. 갈등을 감당할 수 있는 내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신중함, 호랑이 무늬처럼 선명한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바름이 있어야 후회가 없다는 혁괘의 경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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