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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30] ‘드디어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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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드디어 ‘종의 기원’이 번역되었다. 이제야 드디어 진화학자가 번역한 제대로 된 책이 나왔다는 말이다. 다윈의 책을 번역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우선 문장이 너무 길다. 다윈의 문장은 때로 페이지를 넘겨야 마침표가 찍힌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번역된 다윈 저서들은 쉼표와 세미콜론 단위로 마구 끊어 번역해 종종 독해가 불가능하다.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맞물린 '2009년 다윈의 해'를 4년이나 앞두고 다윈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한데 모여 '다윈 포럼'을 결성했다. 우리는 2009년을 우리나라 다윈 연구 원년으로 삼고 우선 다윈의 저서들을 제대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웃 나라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놀랄 만한 학문 발전을 이룩한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번역 사업이 있었다.

우리는 '비글 항해기'는 잠시 접어두고 좀 더 본격적인 다윈의 학술서 3부작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먼저 번역하기로 했다. 우리 목표는 이 번역서 세 권을 다윈의 해에 맞춰 출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은 고사하고 그로부터 꼬박 10년이 더 흐른 지금에야 '드디어 다윈 시리즈' 첫 책을 내놓게 되었다. 용어 하나 개념 하나를 두고도 밤을 새울 지경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머지 두 책도 내년까지는 모두 출간될 것이다.

바야흐로 ‘생물학의 세기’건만 섭섭하게도 이 나라에서 생물학을 하는 학자 대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생물학자가 아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화학이나 물리학 연구를 하는 과학자다. 그렇다 보니 일반생물학 시간에 진화 부분은 가르치지 않고 자기 학습 과제로 내주는 교수가 의외로 많다. 모름지기 다윈을 읽지 않고 생물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도 읽지 않은 채 성직자가 되는 것과 진배없다. 드디어 이제 우리도 ‘다윈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게 되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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