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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도 자격증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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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9. 와인 자격증 도전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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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와인’ 코너를 쓰기로 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내가 과연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가였다. ‘와인은 어렵고, 공부할 것이 많다’는 인식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다양한 강의를 들어왔고, 시음회에도 참석하고, 책도 읽으며 ‘공부’를 해왔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기 위해 WSET에서 주관하는 국제 와인 자격증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는 1969년에 영국에서 설립된 국제와인전문 교육·전문가 인증기관이다. WSET 국제 와인 자격증은 와인 지식 측정과 관련해서는 권위를 인정받는다. 국내 와인 업계 종사자들도 대체로 이 자격증을 갖고 있다. 국내에선 ‘WSA 아카데미’와 ‘와인비전’이 WSET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시험도 주관하는데, 나도 이 중 한 곳을 골라 등록했다.

교육 과정은 입문, 중급, 고급이 있었다. 입문은 와인의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친다. 중급은 포도 품종 위주로 짜여 있고 고급은 와인 산지별로 좀 더 자세하고 심화된 내용을 다루는 식이었다. 나는 중급 과정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8주 과정의 수업 중 첫 시간부터 거듭 강조되는 것은 ‘기후’였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기후에 따라 산도와 당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서늘한 기후에 비해 따뜻하고 더운 기후일수록 산도는 낮고, 당도와 알코올 도수는 높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와인 산지의 기후만 알아도 어느 정도는 맛을 예측할 수 있단다.

대표적인 포도 품종을 비롯해 다양한 품종의 산지와 특징을 배우고 시음주를 마셨다. 와인 초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와인 등급 체계, 와인 라벨 읽는 방법도 배웠다.

어느 정도 아는 내용도 있었고, 새로운 내용도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듬성듬성 알고 있었던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됐다는 점이었다. 나는 와인을 마시고 항상 와인 평가 앱인 ‘비비노’에 기록을 해놓는데, 수업을 듣고 다시 그 기록을 읽어보니 당시에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게부르츠트라뮈너 품종의 와인을 마시고 ‘열대 과일 향이 난다’고 적어뒀었는데, 실제로 리치, 망고 같은 열대 과일 향이 나는 것이 이 품종의 특징이었다.

아쉬웠던 점도 있다. 8주 만에 모든 와인을 자세히 다룰 순 없기에 대략 훑고 넘어가는 부분도 많았고, 모든 품종의 와인을 다 직접 마셔보지 못하고 암기만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8주의 과정을 마치고 WSET 중급 시험을 보러 갔다. 시간을 내 따로 공부하진 못했다. 그동안 마셔본 와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의 뇌와 입이 기억해줄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 문제는 이런 식으로 나왔다. ‘그루나슈/피노누아/진판델/쉬라즈 중 호주 바로사 와인 생산에 많이 이용되는 품종은?’ 평소에 마셔보지 않은 와인이라면 외워야 할 부분이지만 난 평소 호주 바로사 지역의 와인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답은 쉬라즈였다. 와인 양조 방법, 음식과 페어링 방법, 보관과 서비스 방법도 시험에 나왔다. 한 달 후, 결과가 나왔고 ‘최우수 합격’(85점 이상)이었다.

이후 계획은 고급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지만, 강사는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자격증을 또 따는 것보단 그동안 배운 내용을 실생활에서 떠올리며 와인을 마실 때마다 적용해보고, 이후에 고급 자격증을 따도 좋다”고 했다.

취미에도 자격증이 필요할까.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자격 같은 건 필요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와인을 좀 더 다양하고, 더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 건 분명했다. 유홍준 교수(<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말처럼 와인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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