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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休]진흙 돌담 너머, 하멜의 숨결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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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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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행과 관광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관광은 ‘구경’이라는 의미에, 여행은 ‘일이나 유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관광은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고 여행은 방문지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여행은 관광보다 다소 차원이 높은 셈이다. 이 때문에 여행기자들은 여행지의 풍광을 묘사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지역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미 여러 차례 전라남도 강진을 방문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취재의 범위를 헨드릭 하멜(1630~1692·사진)이 머물렀던 고장으로 국한해 파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350년전 조선에 표착한 하멜

“고향으로 보내달라” 간청하자

강진으로 유배, 7년간 억류돼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무역선 ‘스페르베르호(號)’의 서기로 승선해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1653년 7월의 어느 날 태풍을 만났다. 이 배에 탄 선원 64명 중 제주도에 당도한 36명만이 살아남았다. 제주 목사로부터 하멜 일행의 표착 소식을 전해 들은 조정은 27년 전 역시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박연을 내려보내 상황을 파악한 후 이들을 서울로 불러올렸다.

제주에서 나포된 하멜 일행은 해남·영암·나주를 거쳐 장성·정읍·전주를 지나 공주를 경유해 서울로 압송된 후 효종의 근위병으로 훈련도감에 복무한다. 이들에게 군역을 부과한 것은 북벌을 계획하던 효종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접한 서양의 앞선 문물, 특히 총포 기술 등을 전수받아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멜 일행 중 일부가 청나라 사신들의 행렬을 막고 자신들을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조정은 이들을 다시 강진으로 내려보냈다. 이에 하멜 일행은 이곳에서 7년을 지내게 된다. 지금도 강진 곳곳에 하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유다.

특히 강진 전라병영성의 한골목 일대는 하멜 일행이 1656년 3월부터 7년 동안 억류돼 생활한 곳이다. 병영성 한골목에는 돌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쌓고 그 사이에 진흙을 바른 돌담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하멜 일행이 쌓아 올린 네덜란드의 돌담 양식이다.

하멜 일행은 강진에 머무는 동안 전라병영성으로 노역을 나가는 한편 생계를 위해 잡일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이 머물던 3년 동안 조선반도를 덮친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이 기근으로 굶어 죽었다. 조정은 대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7년 동안 억류돼 있던 하멜 일행을 여수·순천·남원 등지로 분산시켰다. 이들 가운데 여수로 보내진 하멜 일행은 1663년 9월 나가사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1668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이 조선 억류 기간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제출한 보고서가 바로 ‘하멜 표류기’다. 이 기록은 유럽에 조선을 최초로 소개한 책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됐고 지금까지 사료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멜 표류기’에는 병영성에 머물던 시절 보았던 커다란 은행나무도 언급돼 있다. 한골목 입구의 성동리에는 수령이 8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하멜이 ‘은행나무 아래 고인돌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기록한 나무일 것으로 짐작된다.

비스듬히 쌓은 네덜란드식 돌담

고국 그리워 했던 은행나무 등

구석구석 하멜 생활의 흔적이



강진군은 하멜 일행이 머물던 북부지역을 ‘하멜권역’으로 분류해 하멜기념관을 만들어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하멜에 관한 기록과 하멜의 고향인 호린험시에서 기증한 동상 등이 전시돼 있다.

이 같은 인연으로 강진군은 호린험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고 있으며 2012년 5월30일에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강진을 방문해 하멜기념관을 찾기도 했다.

한편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은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해 사의재 저잣거리에서 매주 토·일요일 오전11시와 오후2시30분 두 차례씩 마당극을 공연하고 있다. 출연 배우들은 전원 강진군에 거주하는 일반 주민 가운데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배우들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을 줄거리로 하는 마당극을 진행하고 있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은 향후 하멜과 시인 김영랑의 생애를 담은 마당극도 추가로 공연할 예정이다. 임채성 문화재단팀장은 “‘조만간 프로젝트’ 시행 이후 사의재 저잣거리의 매장 매출이 늘어나는 등 경기 활성화와 관광 콘텐츠 확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강진)=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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