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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우물 이어 학교 운동장서도 터진 中암매장 사건···'관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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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성 한 중학교에서 실종된 교직원

16년간 학교 운동장 트랙에 묻혀 있어

가해 의심자와 권력이 유착 땐

흐지부지 조사 중국 치부 드러나

중국 사회가 잇따라 터지는 ‘암매장’ 사건에 분노하고 있다. 먼저 중국 사회를 경악시킨 건 ‘운동장 암매장’ 사건. 지난 20일 후난(湖南)성 신황(新晃)현의 한 중학교 운동장 트랙에서 남성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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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전 살해된 덩스핑이 묻혀 있던 학교 운동장 트랙 부분. [중국 앙스신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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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안의 DNA 검사를 거쳐 드러난 망자의 신원은 16년 전에 실종 신고된 이 학교 교직원 덩스핑(鄧世平). 1950년생으로 사망 당시 53세였다. 왜 그는 자신의 학교 트랙에 16년이나 묻혀 있어야 했나. 어떻게 이제서야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나.

경찰 조사가 진전을 이루며 사건의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짐에 따라 중국 사회의 분노 또한 커지고 있다. 이제까지 중국 언론이 공안 당국의 조사를 토대로 보도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2003년 1월 22일 오전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간 덩스핑은 총무처 주임 야오번잉(姚本英)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때 학교에 새로 운동장을 만드는 공사를 맡은 두사오핑(杜少平)이 덩을 불러 물건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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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성 한 중학교 운동장 트랙에 묻혀 있던 덩스핑 시신을 수습한 자리. [중국 앙스신문 캡처]


물건 수령 후 바둑을 계속 두자며 자리를 뜬 덩은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이 실종 신고를 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이가 나빴던 두사오핑을 의심했지만, 경찰의 수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당시 학교는 ‘중점 중학’으로 올라서고자 400m 트랙이 필요했고 이 공사는 교장 황빙숭(黃炳松)의 생질인 두사오캉의 차지가 됐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당초 공사비는 80만 위안이었는데 이게 갑자기 140만 위안으로 뛰었다. 공사 또한 날림으로 진행됐다.

공사 감독을 맡은 덩은 바른말 잘하는 성격 답게 이런 비위를 현 교육국에 신고했지만, 교육국은 이를 학교에 다시 알린 뒤 학교가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했다. 공사를 맡은 두사오캉이 앙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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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성 '운동장 암매장' 사건에서 범인인 조카에게 운동장 공사를 맡긴 당시 학교 교장 황빙숭. 그는 25일 중국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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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갔지만, 경찰이 수사에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두사오캉과 교장 황빙숭의 사회적 ‘관시(關係)’가 대단한 게 이유였다. 결국 사건은 묻혔다. 한데 이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부터 3년 시한으로 추진 중인 ‘흑(黑)은 쓸어버리고 악(惡)은 제거하자’는 ‘소흑제악(掃黑除惡)’ 캠페인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향촌의 불량배 단속 등 전국적인 흑사회 때리기에 동참 중이던 신황현 공안 당국이 가라오케 운영 등 위법 활동을 일삼던 두사오캉을 붙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근 두로부터 덩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이끌어냈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다그침에 두는 덩을 당시 건설 중이던 학교 운동장 트랙 아래 묻었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진술했던 이유는 시신을 찾기 위해 트랙을 파헤치려면 거액이 필요한 데 공안이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그런 수사를 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해서였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두사오캉이 사람을 죽이고도 오랜 세월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데는 뒤를 봐주는 비호 세력이 있다고 보고 현재 수사를 확대 중이다. 25일에는 두의 외삼촌이자 당시 학교 교장이었던 황빙숭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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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베이성 한단에서 궈후이정은 29년전 실종된 누이의 시신을 찾으려 포클레인을 동원해 의심되는 '마른 우물' 지역을 파헤쳤다. [중국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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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전 실종 여성 찾으려 ‘마른 우물’ 파헤쳐
이 사건에 중국 사회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이번엔 허버이(河北)성 페이샹(肥鄕)에서 ‘우물 암매장’ 사건이 터졌다. 29년 전 실종된 ‘반(反)부패 영웅’ 궈잰민(郭建民)의 딸 궈구이팡(郭桂芳)의 유골 일부를 ‘마른 우물에서 찾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궈구이팡의 남동생 궈후이정(郭會增)은 덩스핑의 시신이 발굴된 데 자극을 받아 최근 중국의 한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누이가 묻혀 있다고 의심되는 동네의 마른 우물 지역을 하루 밤낮을 파헤친 끝에 인골로 보이는 일부 유해를 수습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궈구이팡이 실종된 건 1990년 6월 16일 밤. 세 살짜리 아들을 재우고 당직을 나간 게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93년 2월 집과 직장에서 각각 2km 거리에 있는 우물가에서 여성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궈잰민 부부가 실종된 딸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시신은 그날로 치워졌고 검시 결과는 가족에 통보되지 않았다. 궈잰민은 페이샹의 당 간부로 82년 치러진 선거 부정을 폭로해 반부패 영웅으로 일컬어졌지만 이후 각종 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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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베이성 한단에서 29년전 실종된 누이의 시신 찾기에 나선 궈후이정은 포클레인을 동원해 의심되는 '마른 우물' 지역을 파헤친 결과 인골로 보이는 몇 점의 뼈를 발견했다. [중국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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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궈구이팡은 아버지를 도와 부정 선거 내막을 글로 쓰는 일을 해 미움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궈잰민은 2015년 사망했으나 동생 궈후이정이 ‘운동장 암매장’ 사건 해결에 힘을 얻어 이번에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 두 사건은 억울한 죽임을 당해 경찰에 신고해도 가해자가 권력과 유착해 비호를 받을 경우 사건 해결이 전혀 이뤄지지 않던 중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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