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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장석주의 사물극장] [103] 조지아 오키프와 '소와 야생동물의 머리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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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합과 칼라 같은 꽃과 햇빛에 탈색된 소와 야생동물의 머리뼈를 그린 화가, 사막과 지평선과 붉은 언덕을 사랑한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화집을 선물 받았다. 40년쯤 전의 일이다. 뉴멕시코주(州) 사막에서 찾은 소와 야생동물의 뼈는 햇볕에 바짝 말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화가의 몽상을 자극했다.

오키프는 미국 중서부의 황금빛 옥수수 밭이 펼쳐진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5세에 집을 떠나 20세 무렵까지 시카고와 뉴욕의 미술학교를 전전했다. 사진작가이자 영향력이 큰 화상(畫商)인 스티글리츠(1864~1946)의 뉴욕 갤러리 '291'에서 로댕의 드로잉과 유럽 화단의 신성인 마티스, 브라크, 피카소의 그림을 본 것이 1908년이다.

오키프는 30세 때 갤러리 '291'에서 드로잉과 수채화로 꾸린 첫 개인전을 열고, 스티글리츠는 오키프를 모델로 사진을 300여 점이나 찍었다. 이 무렵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모델이자 애인으로 더 명성이 높았다. 1924년 12월 11일 두 사람은 결혼했다. 오키프는 37세, 스티글리츠는 60세. 정서적이고 영적으로 연결된 둘에게 나이 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키프는 1918년에서 1932년까지 줄기차게 꽃을 그렸다. 캔버스는 백합 한 송이나 두 송이만으로 가득 채워졌다. 꽃의 암술과 수술은 '확대 시점'에 의해 새로운 형상으로 빚어졌다. 꽃을 해부학적으로 확대해 단순 명료하게 해석한 그림은 묘하게도 성적인 연상 작용을 일으켰지만 오키프는 대중의 해석을 거부했다.

1946년 5월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오키프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해 여름 스티글리츠가 82세로 죽자 "파괴를 향한 그의 힘은 창조력만큼이나 강렬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법. 나는 그 둘을 모두 경험했고 살아남았다"고 회고했다. 미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우뚝 선 오키프는 미국 서부의 샌타페이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99세에 타계했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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