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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알람 맞추거나 서서 회의… 주52시간제 비상 걸린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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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퇴근해?"

우리은행에서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금기어'다. 우리은행은 7월부터 은행권에 본격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해 Do & Don't(두 앤 돈트)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직원들이 해야 할 것(Do)과 하지 말아야 할 것(Don't)을 리스트로 만들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사내 문화도 바꿔보자는 취지다. 퇴근 시간에 관련한 질문, 업무 시간 중 사적으로 메신저를 하거나 흡연을 하러 가는 것 등이 대표적인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꼽혔다. 반대로 '정시 퇴근'이나 '임원 등 상급자부터 솔선수범해 퇴근하기' 등은 해야 할 일 리스트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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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안에 끝냅시다" - 내달부터 주 52시간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주요 은행들이 불필요한 업무 시간 줄이기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회의를 압축적으로 하자는 차원에서 알람시계를 각 부서에 나눠 줬다. 5분·15분·30분 등 원하는 시간만큼 알람을 설정해둬 회의가 길어지면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신한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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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주 52시간제 본격 시행에 맞춰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각종 보고나 회의 시간을 단축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야근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문화 자체를 바꾸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위계 문화가 강하고 보수적인 은행권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대비… 회의·보고 다이어트

은행권에서는 각종 회의와 보고, 단체 교육 시간을 '다이어트'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에서는 최근 주요 회의 때마다 책상 위에 알람 시계가 놓인다. 5·15·30분 등 미리 시간을 정해 두고 압축적으로 회의를 하자는 취지다. 은행 전체적으로 어떤 회의도 가급적 1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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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에서는 파워포인트(PPT) 프로그램을 활용한 보고서를 금지시켰다. 상급자에게 보고를 할 때 직원들이 각종 그림과 도형을 써가며 '화려한' 보고서를 만드는 시간을 줄이라는 취지다. 짧은 회의는 아예 선 채로 하는 '스탠딩 회의'로 진행한다. 하나은행은 같은 취지로 '하나·하나·하나'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회의는 주 1회, 1시간 이내, 자료는 회의 1일 전 배포'라는 의미를 담았다.

"일할 때는 제대로 하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농협은행 본점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경쾌한 음악과 함께 "집중근무시간이 시작됩니다. 스트레칭 한번 해볼까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농협은 오전 10시~11시반, 오후 2~4시를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하고, 이 시간에는 각자 제자리에서 집중해 일을 하도록 독려 중이다.

◇'가정의 날'엔 법인카드 사용도 적발

은행들은 반강제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 되면 전국 영업점이나 본점 직원들의 컴퓨터를 꺼버리는 것 같은 제도는 이미 기본이다. 하나은행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서울 을지로 본점의 경우 퇴근 시간이 지나면 조명을 끈다. 야근을 하려면 우선 사전에 상급자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받은 사람은 본점 내 별도로 마련된 '집중업무실'로 가서 야근을 해야 한다. 농협은행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회식·야근을 금지시켰다. 특히 이때는 법인카드를 야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위반 사례를 적발한다.

주 52시간제는 작년 7월 시행됐지만, 소비자 불편을 우려해 은행권은 제도 시작 시기가 올해 7월로 미뤄졌다. 이 기간 주요 은행들은 금융 당국과 협의해가며 주 52시간제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당장 제도가 시행되어도 일단 지점 등에서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특수 업무의 경우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부담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 등 해외 금융시장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또 분기별 각종 재무제표를 정리해 공시해야 할 때나 기업에 대한 대규모 대출 프로젝트 등이 진행되는 경우 일주일 이상 집중적으로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A은행 관계자는 "갈수록 IT 비중이 높아지는데 IT 설비 개·보수나 점검 등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주 52시간을 지키기 쉽지 않다"면서 "규모가 작은 금융회사일수록 주 52시간제 부담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한국 기자(kore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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