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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fn스트리트] 성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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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에 있는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은 예부터 성소(聖所)로 통하던 곳이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이곳에서 불도를 수행한 보천(寶川) 태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천은 신라 31대 신문왕의 아들로 왕위를 사양하고 불법 연마에만 정진했다. 동굴에 들어앉아 밤낮으로 불경을 독송한 그는 허공을 붕붕 날아다닐 정도로 내공이 깊었다고 한다. 성류굴(聖留窟)은 말뜻 그대로 '성인이 된 보천이 머물렀던 굴'이라는 뜻이다.

고려 말 문신 이곡(1298~1351)도 성류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가 금강산 등을 기행한 뒤 지은 '동유기(東遊記)'라는 책에는 "좌우측이 더욱 기이하여 혹은 깃발 같기도 하고 혹은 부처 같기도 하다. 수십보를 가면 돌들이 더욱 기괴하고 형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더욱 많다. 그 깃발 같고 부처 같은 것이 더욱 길고 넓고 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도 성류굴을 그림으로 남겼다. 겸재는 1734년 경상도 청하(지금의 포항 일대) 현감으로 있으면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있는 암봉과 그 아래 괴수의 매서운 눈처럼 빠끔히 뚫려 있는 성류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동굴을 품고 있는 선유산(仙遊山)의 우람한 자태와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왕피천의 모습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보는 이들의 눈을 압도한다.

최근 이 굴 안에서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금석문이 대거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동굴 입구로부터 약 23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20여자(字)의 글자를 해독해보니 뜻밖에도 신라 24대 진흥왕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경진년, 즉 서기 560년 6월에 진흥왕이 50인의 보좌를 받으며 이곳에 행차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진흥왕은 북한산을 비롯해 황초령, 마운령 등에 순수비를 세웠던 정복 군주였던 만큼 이곳에서 또 다른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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