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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1등항해사 출신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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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집무실에서 취임 후 첫 인터뷰에 임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운재건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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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1등 항해사 출신으로 10년간 선박을 직접 몰아본 선장.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가 설립한 세계해사대학의 첫 한국인 교수. 남다른 이력이기도 하지만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진해운이 파산하자 반 토막으로 쪼그라든 국내 해운업을 재건할 '구원투수'가 절실했던 청와대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61)을 낙점한 것이 바로 이런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그의 30년 현장 경력과 이론적 전문성에 토를 다는 이가 없었을 정도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문 장관에게 놓인 최우선 과제도 해운산업 재건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쇠락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해운 재건이라는 '특명'을 받은 문 장관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해운 재건에 대한 구상은 무엇인가.

▷전임 장관이 계획을 잘 수립해 놓았다. 한진해운이 망했는데 그들이 갖고 있던 물류 네트워크 자산을 돈 받고 팔았으면 아마 수조 원은 됐을 거다. 그래도 해운 재건 계획을 통해 이른 시간 내에 가시적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 대형선 20척이 발주됐다. 내년 4월부터 2만3000TEU(1TEU는 길이 6m짜리 컨테이너 1개) 선박 12대, 이어서 1만5000TEU 선박 8대가 추가로 나온다. 이 선박들이 운항을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선복량(선박 화물총량)이 52만TEU인데 새 선박들이 나오면 100만TEU까지 간다. 한진해운 사태 이전 규모를 회복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룰 만한 인프라를 갖춘다고 보고 있다.

―화물량이 예전만 못한 상황인데.

▷버스, 기차와 마찬가지로 실어 나를 짐과 사람만 있으면 장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안정적인 화물이 확보되면 경영 안정은 저절로 따라온다. 선사의 자구 노력이 전제가 되겠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현대상선이 화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물론 선사가 국제 해운사들과 얼라이언스를 맺는 문제는 별개다.

―현대상선의 얼라이언스 경과는.

▷현대상선이 맺은 최대 해운사인 2M(머스크·MSC)과 협력 관계가 내년 3월 종료된다. 4월부터는 정식 멤버가 되든 어떤 형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든지 해야 한다. 늦어도 올해 9월 말까지는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선사의 협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상선은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머스크가 성공한 건 다른 선사들이 모두 주저할 때 치고 나갔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컨테이너선 주류가 1만3000TEU였을 때 과감하게 1만8000TEU를 주문했다. 결국 이 선택이 다른 해운사들이 모두 적자에 허덕일 때 머스크만 단가를 내리고도 홀로 흑자를 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지금은 얼마나 비용을 낮추는가에 기업의 성패가 달린 시대다. 현재 해운업은 운항을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다. 현대상선이 주문한 배가 2만3000TEU이기 때문에 지금 주류인 1만8000TEU와 갭이 5000TEU다. 머스크가 1만8000TEU 선박을 도입할 당시 갭과 같다. 단가를 더 낮출 수 있고, 친환경적이고 더 효율적이다. 아무리 세계 해운 물동량이 줄어도 코스트를 낮춰서 살 기업은 살아남을 거다.

―항만 개발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신남방과 신북방 정책의 연계가 필요하다. 최근 방글라데시 파이라항 컨테이너터미널, 도로, 교량을 설계·감리하는 사업을 우리 기업들이 따냈다. 동남아시아에는 우리가 가진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할 여지가 많다. 특히 동남아·동북아와 같은 인트라 아시아(Intra―Asia)는 물동량 측면에서 전 세계 최대다. 향후 남북 관계가 잘 풀려서 북한의 항만과 배후단지 개발에도 참여하게 되면 금상첨화다.

―크루즈 산업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해사대학 교수 시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노르웨이로 가는 크루즈를 두 번 타봤다. 비싸지도 않고 준비할 것도 없고 참 좋더라. 운전할 필요도 없고 타는 순간부터 먹고 자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도 이제는 크루즈를 대중화·보편화해야 한다. 인프라도 필요하고 서비스 루트도 완비돼야 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크루즈 산업 육성의 핵심이 선상 카지노 허용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직접 타보니 선상 카지노는 소규모다. 몇 백만원으로 카지노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베팅에도 제한이 있고 육상에 있는 카지노와는 다르다. 크루즈 산업 발전을 위해선 카지노가 허용돼야 한다. 특히 외국 크루즈 선사와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외국 국적 크루즈선에서는 카지노가 되고, 우리 국적 크루즈에서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겠나. 관계 부처와 협의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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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어업협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양국 간 이견이 있다. 정부는 일단 입어협상을 하고 동해 중간수역 교대조업과 관련해서는 민간업자들끼리 협의체를 구성해서 대화를 하라는 게 기본적인 방향이다. 아직 민간 협의에서도 결론이 안 난다고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한다.

―주한 일본대사가 예방했을 때 후쿠시마산 수산물과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눴나.

▷일본은 수입을 재개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은 명확하다. 국민의 식탁안전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쪽에서는 후쿠시마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나는 안전하다는 것과 안심이 된다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안전한데 왜 안심하지 못하느냐고 하길래 2013년 사례를 얘기해줬다. 당시 일본에서 수산물이 수입된다는 이야기가 퍼지니까 국내산을 포함해 수산물 전체를 사 먹지 않는 사태가 빚어졌다. 전체적으로 수산물 수요가 10%나 감소했다. 실제 안전한지도 계속 확인할 문제지만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국민이 불안해하면 안 되는 것이다.

―조선과 해운을 같은 부처가 담당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조선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운은 해양수산부가 맡고 있다. 해운은 해운대로 어렵고, 조선은 조선대로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다. 일원화는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재임 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정책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을 활용해 스마트 해운항만물류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해운항만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수산 분야에서도 수산물의 생산·가공·유통 모든 분야에서 정보기술(IT)력을 활용하는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다. 각 분야가 서로 호환될 수 있도록 시스템적 스마트화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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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여의도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지구의를 가리키며 해운업과 세계 무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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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승선…지금도 당장 배 몰 수 있어
박사·교수·장관님보다…캡틴이 더 듣기 좋아

진지한 '교수님', 딱딱한 '장관님' 스타일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건 인터뷰 중간쯤 배 탔을 때 얘기를 들려 달라고 요청했을 때였다. 항해사로, 선장으로 바다와 함께했던 경력은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훈장'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선장 경력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이 같은 자부심 때문이다. 배를 탄 기간만 10년이라는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그 경력을 밑거름 삼아 한국인 최초로 세계해사대 교수를 지낸 국내 최고 해양 전문가다.

―선장 출신이란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첫 항해는 해양대 실습선에서 했다. 상선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 파견 형식으로 1987년부터 현대상선에서 10개월 정도 항해사로 있었다. 2002~2003년에는 작은 배였지만 1년 정도 선장도 했다. 이런저런 실습 경력 등을 합해 승선 기간이 10년쯤 된다. 연안은 물론 대양에도 나가 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배를 몰 수 있을 정도다. 배를 몰 수 있는 해수부 장관은 내가 처음일 거다.

―여러 경력이 있는데 어떤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여태껏 가져 본 타이틀이 교수, 박사, 선장 등이다. 비행기 조종사도 캡틴, 스포츠팀 주장도 캡틴, 해군 대령도 캡틴이다. 어떤 무리의 리더라는 뜻이다. 정식 명칭으로는 선장을 마스터 머린(master marine)이라고 하지만 보통 캡틴으로 부른다. 세계해사대 재직 시절 교수(professor)나 박사(doctor)보다 선장(캡틴)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박사도 흔하고 교수도 많지만 캡틴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장관이란 타이틀도 붙겠지만 그래도 나는 캡틴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다.

―세계해사대 교수로 임용된 계기는.

▷2008년 공모가 있어 지원해봤다. 예선인 서류 단계를 통과하자 비행기표를 보내주더라. 알고 보니 면접을 본 6명 중 나만 영어권 출신이 아니더라. 승선 경력이 없었으면 아마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박사나 교수 출신은 많지만 배를 타 본 사람은 해외에서도 많지 않다. 처음엔 2년만 있다가 오려고 했는데 그렇게 오래 머물게 될지 몰랐다. 해양대에선 휴직을 하다가 해사대 교수 기간이 연장되면서 계속 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 해양대에는 사직서를 냈다.

―이번 정권과 인연이 있나.

▷아무런 인연이 없다. 2008년부터 이번에 지명받을 때까지 잠깐씩 귀국했을 때를 빼면 계속 스웨덴에 있었다. 해사대 경력 등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후보자 지명 시 청와대 대변인도 이런 경력을 지명 배경으로 언급했다.

―장관 취임 후 매 주말 현장을 갔는데.

▷업무를 파악하는 데 현장에 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 목포 광양 여수 부산 인천 등에 다녀왔다. 현장에서는 주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한다. 특히 총허용어획량(TAC)을 할당하는 수산혁신 2030계획에 대해 어민들의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어업을 더 활성화하려면 수산자원을 남획해선 안 된다. 수산자원을 회복하는 것 말고는 현재 답이 없다. 이제까지는 고기 잡는 방식, 장소 등을 규제했다면 이제는 총 어획량으로 규제하되 그물 크기 같은 자잘한 규제를 풀어주려고 한다. 그 밖에 항포구 개선 사업이나 정주여건 개선 사업도 계속하려고 한다

■ 문성혁 장관은…

△1958년 부산 출생 △서울 대신고 △한국해양대 항해과 △영국 카디프대 석·박사 △현대상선 1등항해사 △한국해양대 교수 △2008년 스웨덴 소재 세계해사대 교수 임용(한국인 최초) △2019년 4월 해양수산부 장관

[최희석 기자 /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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