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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산문집 `연필로 쓰기` 출간한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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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출간한 소설가 김훈과 지난 17일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일산 작업실에서 만났다.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막장`이라고 생각한다. 막장은 거룩한 자리"라며 어두운 표정을 쉽게 풀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손에 연필을 쥐고 있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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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조차 대답이었다. 소설가 김훈(72)을 만났다. 산문집 '연필로 쓰기' 출간 소식을 듣고 만남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적막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산문집 첫 장 '알림'에 적힌 저 한 줄은 아무와도 만나지 않으리란 준엄한 경고 같았다. 한 줌의 글을 보내 어렵사리 그의 마음을 돌려 '김훈(金薰)'이란 두 글자 명함이 붙은 일산 작업실 대문을 결국 열었다. 이쪽에선 'ㄴ' 자, 저쪽에선 'ㄱ' 자 모양 책상에 마주 앉아 응전하듯 대화를 나눈 뒤 단골 소줏집으로 장소를 옮겨 벤자리돔 한 접시에 삼양라면 한 그릇을 놓고 소주 한라산 여섯 병을 싹 비웠다. 술자리 대화는 함구를 약속했지만 술잔도 대화도 간혹 엎질러지게 마련이니, 그 나무탁자에서 건더기만 건져낸다. 웃음기와 울음기가 뒤섞인 21도짜리 씁쓸한 술잔이 몇 순배쯤 돌았던가. 분량 관계상 부득이 문어체로 옮긴다.

―산문집 두 번째 글 '밥과 똥'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똥'에서 모색한 인간의 길이었다. 오염된 것을 말해 염결해지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똥은 피치 못할 것이지, 오염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고, 외면 당하며, 우리가 실체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거다. 대도시에서 똥은 매일 생산되고 모두 강으로 간다. 위생 처리를 하지만 저 강이 똥을 무한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계가 오겠지…. 끔찍한 일을 생각하며 썼다.

―산문을 쓸 때와 소설을 쓸 때는 서로 다른 마음이겠다.

▷내면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으니, 산문은 내게 쉬는 일이다. 소설은 내가 '없어져야' 하는 글이다. 내가 나타나면 소설이 안 된다. 대신 등장인물이 열 명이면 그 열 명을 다 알아야 한다. 확실한 3인칭이어야 한다. 3인칭을 쓰더라도 쓸 때는 1인칭이다. 3인칭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1인칭에 머무르는 딜레마, 항상 그게 문제다.

―소설은 3인칭을 대신 사는 장르일까.

▷3인칭의 바다로 나가는 거다. '그'와 '그녀'가 아니라 '그대'와 만나는 것, 연애는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든다. 소설은 연애가 아니다. 소설은 누군가를 3인칭으로 '밀어내는' 거다. 3인칭 시각으로 세계를 냉엄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소설가다.

―'확실한 3인칭'을 더 설명한다면.

▷3인칭은 바다와 같다. 1인칭 '나', 2인칭 '너'를 제외하면 세계는 죄다 3인칭이다. 형식만 3인칭일 뿐, 3인칭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소설이 허약해진다. 완강한 3인칭이어야 한다.

―'소설가'란 수식을 기피하는 걸로 안다.

▷책을 낼 때 내 소개에 '소설가'라고 안 쓰는 건 남우세스러워서…. 소설 내면서 무엇하러 '소설가'라고 쓰나 싶다. 또 나는 내세울 게 없는 인간이다. 줄여 쓴 소개를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타협할 수 있는 일은 못 된다.

―공간의 창조자, 미학적 문장가. 어느 쪽인가.

▷분리해 말할 수 없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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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을 염탐하러 와보니 바깥과 이질적인 적막의 세계다.

▷들어올 때마다 '막장'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깊이 들어간 광부의 처소가 막장이다. 막장은 낮지 않다. 순결하고 거룩한 자리다. 막장의 다른 말은 채벽(採壁)이다. 벽을 찍는 사람은 선산부(先産夫), 나르는 사람은 후산부(後産夫)다. 나는 글이라는 막장의 선산부다. 세계의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는 상태라는 자각에서 글은 온다. 의지할 곳이 없다는 깨달음이 원고지를 채운다.

―수북한 지우개 가루는 채벽의 흔적인가.

▷나의 낙후됨을 말하는 것이다. 늘 저러고 있으니까…. 싹 쓸어내야 한다. 이게 쓸어내는 빗자루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옛 인터뷰 중 이 한마디는 소설가 김훈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으로 꼽힌다. 신념에 변함은 없는지.

▷신념이 아니다. 현실을 말한 것이다. 책과 글을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렇게 언어를 장악한 자가 훈계하고, 겁주고, 관념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을 가진 자를 나는 혐오한다. 언어를 맹신하는 바보가 되면 안 된다.

―'바보'가 안 되는 길이 있나.

▷문학과 소설…. 그것은 아득하고 먼 얘기다. 금과옥조로 믿으면 안 된다. 맹신하면 장악할 수 없다. 언어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언어란 서로 맞댄 거울 두 개와 같다. 끝없는 동어 반복이 생긴다. 맹신하는 자들이 두 개 거울에 빠져 있다. 언어에 매달리면 공허를 거듭한다.

―어디에서도 구원(救援)을 얻지 못하니, 문학이란 모닥불에 모이는 건 아닐까.

▷구원이 도대체 뭔가. 어떻게 하는 건가. 사람의 생로병사가 있을 뿐이다. 구원은 종교인의 말이며 구원의 다른 말은 도덕적 각성이겠다. 문학을 통하지 않아도 도덕적 각성에 도달할 수 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하면 되는 거다. 인간은 약한 자의 것을 뺏어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되지, 책을 읽어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말하는 게 문학일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마주 보는 두 개 거울처럼 끝없는 공허다. 그럼 왜 쓰느냐. 말의 표현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글 쓰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인간 인식 영역의 확장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에 '슬픔을 그저 슬퍼하는 글'이라고 썼다. 김훈 소설은 '슬픔을 슬퍼하는 글'일까.

▷슬픔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슬픔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언제 슬픈가. 자주 슬픈가.

▷슬픔에 이제 둔감해진다. 김용균 씨 죽음이나 세월호 참사는 슬프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탄 건 나의 슬픔은 아니었다. 사람이 안 죽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생명 하나와 비교한다면 대성당 화재는 땅을 치고 싶을 만큼 아까운 일이지만 슬픈 일은 아니다. 사람이 죽은 건 별로 슬퍼하지 않으면서 불에 탄 성당은 슬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 생각이야말로 슬프다. 실수로 불이 난 거지, 인간의 악(惡)이 작동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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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무사(武士)` 김훈의 책상엔 지우개 가루가 수북했다. 독특한 모양의 굵은 붓은 지우개 가루를 쓸어내는 전용 빗자루다


―소설로 돌아가자. 문장으로 역사를 재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역사에 관심이 없다. 쓰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시대와 소재를 끌어다 쓰는 거다. 소설 '남한산성'은 언어의 현실과 공허한 이념이 부딪치는 모습을 그려보겠다고 썼다. 인간의 야만성, 절망과 싸우는 방식, 현실적 허명과 개인의 욕망이 맞대결하는 방식…. 나는 역사가가 아니다.

―당대가 아닌 현대를 보려던 건지.

▷악과 폭력, 언어와 현실은 인간 세계의 고질적 문제다. '남한산성'에서도 말을 제일 잘하는 자가 김상헌이지 않았나. 최명길은 말을 잘 못했다.

―김상헌의 1인칭 문장이 설득력이 강해 김상헌이 되레 옳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정치에 틀림이 있을까 싶지만.

▷3인칭 소설에 '나'라는 건 없는 거다. 그 자리에 있던 선비 중에 아무 말도 안 한 선비가 있었다. 칠품 선비였다. 소설에 못 썼다. 당시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은 했겠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존재하되 침묵하는 그를 소설에 썼다면 진정한 단죄였을까.

▷우리는 겪어보지 않은 시대의 고통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그것은 감히 말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거다. 쓸수록 쓸 수 없는 게 더 많다.

―소설과 산문은 리듬이 다르겠다.

▷리듬 대신 박자라고 하자. 요즘 내 박자가 많이 산문화돼 있다. '칼의 노래'의 휘몰이장단, 자진모리장단처럼 빠르게 치고 나가는 박자를 몇 번 쓰면 녹초가 된다. 문장에는 전압이 있다. 발전(發電)이 어렵다. 긴 문장끼리 부딪히면 찌릿찌릿한 스파크가 튄다. 긴 문장을 하나 쭉 치고, 도중에 끊고…. 그렇게 '아편'을 뿌리는 거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 듯 작가는 다들 전술이 다르다.

―육하원칙의 육하(六何)에서 단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뭘 던지겠는지, 단 하나만 취할 수 있다면 뭘 택하겠는지.

▷육하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문장은 균형을 잃지만 육하를 맞추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경우마다 다른 것 같다. '언제'가 중요하기도 하고, 인과가 중요하기도 하고…. 주어와 동사를 뺄 수는 없으니 부사부터 없애겠다. 반대로 하나씩 취할 수 있다면 '누가'와 '왜'부터 가져가겠다. 인간과 인간의 이유를 써야 하니까….

―최고조로 녹초가 됐던 소설은.

▷단편 '화장'을 쓸 때 정말 피곤했다. 사흘 만에 썼는데 어리석은 짓이었다. 극도로 피곤했다. 내게 떠오른 그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그걸 껴안고 사흘 만에 썼다. 요새는 안 그런다. 내일 하자, 모레 하자 이러고 있다(웃음).

―요즘 읽은 책은 무엇인지.

▷둔황 막고굴에 관한 사진집(중국에서 '둔황의 딸'로 일컬어지는 고고학자 판진스의 2009년작 'The Caves of Dunhuang')이다. 지인이 둔황 다녀오는 길에 사다줬다. 종교적이지 않고, 생활적인 그림들이다. 생활의 구체성이 강한 책이다. 그리고 여기 삼성 SSAT 예상문제집도 읽었다. 도대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무슨 시험을 치르나 궁금해 들춰봤다.

―집필 중인 소설을 귀띔한다면.

▷뭘 쓰긴 쓰는데, 뿌옇다. 사실 나도 뭔지 모르겠다. 어떠한 시대도 아닌 시절을 설정하고 있다. 윤리나 미의식이 생기기 전 시대다.

―마지막 질문이다. 두려운 건 뭔가.

▷글쎄…. 죽는 게 두렵다. 화장장에 가면 안다. 사람 죽으면 한 되 반이다. 모두 한 되 반짜리 흰 가루가 된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한 봉지씩 나눠준다. 내 거 나오기 전에, 뒤에 거 또 보인다. 그걸 쳐다보다 보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다. 여생을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화장장 가면 우는 자도 없다. 상주는 밤새우느라 피곤하니 하품하며 꾸벅꾸벅 졸고, 애들은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기계화된 죽음이다. 뭐든 저렇게 4차 산업식으로 되는 것 같아…. 남은 시간이 그래서 무섭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까불지 말아야지, 절대 까불면 안 된다고….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낸다. 막장에 고요히 들어앉을 수밖에 없다는….

▶▶ 김훈 작가는…

△1948년 5월 서울 출생 △돈암초, 휘문중·고 졸업 △고려대 영문과 중퇴 △한국일보 기자 △시사저널 편집국장 △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 △문학동네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데뷔(1994년) △대표작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공터에서' 등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황순원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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