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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ESC] 우동이 어묵과 왈츠를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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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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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친해진 친구가 있다. ‘왜 이제 만났지’ 싶을 정도로 생각과 마음이 꽤 잘 맞는 이다. 함께 노는 것이 무척 즐겁다. 먹고 마시는 데에도 꽤 ‘열심’인 사람이다. 그래서 ‘숨겨놓은 맛집 목록을 내놓아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이었다. 그가 “여기는 내가 진짜 아끼는 사람과 가는 곳이다”라고 생색을 낼 때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누구는 그런 집 없는 줄 아나’ 불만을 속으로 삼키고 따라나섰다.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는 서울시 송파구, 그것도 신천동이라니. 속없이 번화하고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무슨 맛집이 있을까 싶어 끊임없이 의심할 때쯤이었다. 그가 갑자기 으슥한 골목으로 안내했다. 친구는 “아는 사람 아니면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잘난 척했다. 뒷골목에서 방향 감각을 잃을 때쯤 외진 건물 2층의 ‘와라비 타로’가 보인다.

일본식 선술집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굳이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이자카야까지 찾아가야 할까? 나의 볼멘소리도 잠시! “20년 전부터 다니던 추억의 맛집”이라는 친구의 설명에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들어서자마자 위스키로 만든 하이볼, 진저에일을 넣은 하이볼 등을 고루고루 주문했다. “단골인 친구, 네가 알아서 주문하라”고 모든 결정을 그에게 위임하고 하이볼을 들이켰다.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이자 손님 대부분이 주문하는 ‘마구로 육회’, 일본식 고등어 초절임 ‘시메사바’, 모둠 튀김과 오징어 몸통 구이까지 한 상 가득 술을 부르는 음식들이 나왔다. 길고 얇게 썬 참치 회와 아삭하고 얇은 무를 달걀노른자에 비벼 먹는 ‘마구로 숙회’는 계속 먹게 하는 묘한 매력이 넘쳤다. 시메사바는 비릿한 풍미 없이 새콤하고 쫀득해서 속절없이 “독주 한 잔 더 마시자”는 소리가 나온다. 회로 차가워진 배는 이곳만의 비법 소스를 넣은 따끈한 ‘우동스키’로 데운다. 우동과 각종 어묵이 가득 들어있어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해장하려다 술을 더 마시게 되는 ‘아이러니’한 안주다.

이곳은 가는 길도 복잡하고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는 무심한 접객 태도가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20년 동안 한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단골이 많은 집에는 이유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늘 그곳에 있는, 힘들 때도 즐거울 때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도 신나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취하면서 되뇌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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