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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수포자·영포자들 감긴 눈 뜨게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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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정부 ‘기초학력 보장 강화’ 정책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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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내놓은 뒤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초학력이 떨어진 것으로 나오자 “정말 낮아졌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부터 “사실상 일제고사가 부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또 하나의 시험이 늘까 불안해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있고, 모든 아이의 기초학력을 보장한다고 하니 든든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부가 기초학력보장법을 추진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기초학력 대책’을 내놓은 과정을 알아보고, 다양한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 기초학력 대책이 나오기까지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초등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기초학력 진단을 의무화하고, 학교 안팎의 기초학력 안전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초학력’이란,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갖춰야 하는 읽기·쓰기·셈하기(이른바 3R) 등을 포함한 최소한의 성취수준을 충족하는 학력이라고 교육부는 정의합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어, 수학에서 평가기준의 하 수준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진단한다”며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를 막기 위해 학교가 진단 도구·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하되 학교·교육청·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각 시·도 교육청에서 활용하는 ‘기초학력 진단 보정 시스템’의 문제 난이도를 보면,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그림이나 구체물을 이용해 크기가 같은 분수를 찾을 수 있는지, 제시된 숫자 중에서 주어진 수의 약수를 찾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이는 한 학년 아래인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분수나 약수의 개념을 배우면서 익히는 수준이지요.

'학업성취도' 기초학력 미달 늘어

학교 현장 "일제고사 부활" 걱정

보수언론 "혁신학교 진보교육감 탓"

성취기준 적정화 등 평가 논란도

이런 대책이 나온 배경에는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실시한 ‘성취도 평가’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국·영·수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영어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년보다 늘었습니다. 수학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중학교 3학년은 11.1%, 고등학교 2학년은 10.4%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학생들의 학교생활 행복도는 높아져, 행복도 ‘높음’ 비율이 2013년에 비해 중학생은 19.1%포인트, 고등학생은 20.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이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보수 언론이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학력이 저하됐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과 진보 교육감 탓으로 돌렸습니다. “혁신학교가 늘어서” “수월성 교육인 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해서”라고 공격했습니다.

교육부는 “혁신학교 정책으로 학력이 저하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조사방식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수조사(2008~2016년) 결과와 표집조사(2003~2007년, 2017~2018년) 결과를 비교해보면, 표집조사 결과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고 들쑥날쑥이었습니다. 전수조사를 하면 아무래도 시험 준비를 많이 시켜 상대적으로 점수가 좋은 편입니다. 반면 표집조사 땐 학생들이 얼마나 시험에 진지하게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큽니다. 정부는 지난해 결과를 학생들의 학력 저하로 단정하기보다 ‘기초학력 보장’ 쪽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현재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표집학교만 성취도 평가를 하는데, 나머지 학년에서도 기초학력을 진단하고 이렇게 나온 데이터를 토대로 학교 특성에 맞게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부 “학교 안팎 기초학력 안전망”

‘두드림학교 체계적 지원’ 목소리도

핀란드. 영유아때부터 예방적 개입

미국은 ‘모든학생 성공법’ 국가 지원

■ 대책 뒤 벌어진 논란들 살펴보니

교육계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성명서를 내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일제고사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기초학력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부는 ‘한날 동시에 모두가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어서 일제고사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평가 내용이나 방식, 대책의 실효성 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무엇보다 현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어려워서 ‘성취기준 적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서울대표(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5~6학년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과목 성취기준만 200개가 넘는다”며 “어려운 교과서와 성취기준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진단하면 기초학습 부진아를 양산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10명 중 1명이 ‘수포자’인 현실에서 무조건 아이들의 학력이 낮아졌다고 단정하기보다 수학 교과서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닌지,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등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기초학력 진단평가 방식이 현재의 ‘2015 교육과정’과 잘 연동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2015 교육과정은 발표와 토론을 강조하는데, 주입식으로 가르칠 때 점수가 잘 나오는 지필고사 방식으로 평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초학력 기준’이 너무 낮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기초학력 최저 기준점을 20%로 정해놓고 교육의 질을 관리하게 되면 부작용만 크다”며 “싱가포르처럼 초등의 경우 최소 5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천차만별 의견이 존재해 ‘기초학력은 무엇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 커지는 교육격차, 통합적 대책 필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기초학력 관련 정책을 어떻게 펼치고 있을까요? 미국, 일본, 핀란드,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은 교육 불평등 완화를 위해 기초학력 관련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에 올라온 각국 정책들을 보면, 미국은 2002년부터 ‘낙오 학생 방지법’을 만들고 국가 차원의 의무적인 학력진단평가를 실시해 학습부진 학교를 집중지원했습니다. 기초학력을 보장하지 못하는 학교는 연방 보조금을 제한하기도 했지요. 오바마 정부는 2015년 ‘모든 학생 성공법’(ESSA)을 만들어 징벌적 방법은 개선하면서, 저소득층이 많은 학교를 ‘우선지원 대상’으로 정하는 등 노력을 했습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 비율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낮은 핀란드는 예방적 개입을 더 중시합니다. 영유아 시기부터 언어발달이 늦으면 누구든 무료로 기초단위 병원에서 ‘발화 치료’를 받습니다. 또 핀란드어가 서투른 이민자 아이들의 기초학력 강화에 힘을 쓰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이민자 가정 학생들에겐 입학 초기부터 예비과정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교육 불평등 연구를 꾸준히 해온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소득 격차로 인한 교육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국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느는 추세”라며 “정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해 첫 발을 뗀 것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이 정책은 교사의 공감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부가 현장 교사들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초학력 부진아들을 담당했던 교사들은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을 학교 내 상담교사, 돌봄교사 등 다중인력이 지원하는 ‘두드림학교’에 더 체계적인 지원을 할 것을 원합니다. 양적 확대에 그치지 말고 ‘두드림학교’가 실질적으로 돌아가도록 전문성 있고 부장급 이상 등 교내 영향력 있는 교사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는 ‘두드림학교’를 평교사가 ‘폭탄 돌리기’ 하듯 1년 단위로 하는 경우도 많다네요. 또 학교뿐 아니라 가정은 물론 학교 밖 사회복지기관이나 의료기관 등이 연계된 통합적인 정책을 원합니다. 이 정책이 기초학력 미달자 줄이기라는 ‘숫자놀음’이 되지 않으려면, 한 아이를 둘러싸고 가정 및 학교, 그외 학교 밖 다양한 기관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통합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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