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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창립 50주년에 은퇴 선언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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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퇴임 발표 하루 전인 15일 동원산업 본사 18층에 위치한 회장실에서 `거꾸로 세계지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반도는 대륙 끝에 매달린 작은 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으로 향하는 천혜의 부두이자 동북아의 전략적 관문에 해당하는 요충지라는 것이 김 회장의 지론이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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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이은아 유통경제부장

지난 15일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방에 들어서자 '거꾸로 된 세계지도'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는 대륙 끝의 작은 반도가 아닌 태평양을 향하는 요충지라는 그의 철학이 담긴 지도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50년간 동원그룹을 이끌어 온 김 회장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 회장은 인터뷰 중간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시대에 접어든 만큼 젊은 세대가 경영 전면에 나서 이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녀인 김은자 동원육영재단 상무가 동석해 조용히 김 회장의 말을 받아 적었다.

김 회장은 사퇴 의사를 가족과 일부 최고위 임원에게만 알렸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공식 퇴임 의사를 밝히겠다는 김 회장의 의사를 존중해 기념식 이후에 보도하기로 했다.

'연 7조원대 매출, 재계서열 30위권'. 올해 50주년을 맞은 동원그룹의 현주소다. 원양어선 한 척으로 시작한 동원그룹은 수산·식품·패키징·물류 등 4대 사업 축을 통해 9조원대 자산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의 시대 변화를 읽는 능력, 과감한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반백 살의 동원그룹이 존재할 수 있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창업해 어느덧 80대 중반에 이른 김 회장이지만 열정만큼은 젊었을 때 못지않다. 그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 회장이 주시하고 있는 분야는 4차 산업혁명이다. 김 회장은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첨단기술이 기업 경영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 전체에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었다. 김 회장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일념하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도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발간된 AI 기술 서적을 들여와 한국어 번역을 따로 의뢰해 정독했을 정도다. 다음은 일문일답.

―50년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사건은.

▷사업 초기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을 거뒀던 순간이 떠오른다.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동원산업은 설립된 지 4년밖에 안 된 작은 수산업체였다. 천정부지로 유가가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졌다. 몸을 움츠릴 법도 했지만 과감한 투자로 정면돌파를 택했다. 충분한 계산과 분석에 기초해 4500t급 공모선인 '동산호'를 건조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사운을 건 도전이었던 만큼 직접 동산호에 승선해 조업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경험이 동원그룹을 이끌어가는 큰 밑천이 됐다. 1982년 한신증권 인수도 기억에 남는다. 투자 규모가 70억원 이상으로 당시 그룹 전 재산(자본금 20억원)보다 컸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과정(AMP)을 밟을 당시 증권업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그룹에 RPA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지금은 고속변화의 시대다. AI 기술을 우리 산업과 어떻게 잘 엮느냐가 중요한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재고관리, 결제업무, 단순 재무회계 등에 RPA를 적용했다. RPA는 사람이 보다 창의적인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로봇에 반복업무를 맡기는 시스템이다. 향후엔 RPA를 엮어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만드는 것까지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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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스타키스트 이후 여러 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기업하는 사람이 적자경영을 하는 건 사회에 죄를 짓는 거라 생각한다. 2011년 인수한 세네갈 참치캔 회사 스카사(S.C.A SA)는 2018년 첫 흑자경영에 성공했다. 베트남 포장재 사업 역시 지난해 사업장을 크게 증설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가고 있다. 현재까지 M&A 성과는 만족스럽다. 나의 경영지론은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하고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영 확대를 위해 해외기업이 동원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을 해외로 보내는 지역전문가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어제도 남태평양으로 한 명 보냈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유는.

▷라이프아카데미는 단편적 지식습득 교육에서 벗어나 올바른 지(智)·덕(德)·체(體)를 갖춘 대학생을 육성하는 전인교육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지식과 인성을 모두 갖춘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3년 전부터 시작했다. 현재 11개 대학에서 라이프아카데미를 실시하고 있는데 3~4개월만 지나도 학습자들의 눈동자가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 오너리스크가 불거진 적이 없다. 두 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아들들에게 편안하게 살고 싶은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면 가게를 하나 차려줄 생각이었다. 둘 다 사업을 이어받고 싶다고 대답하길래 "그럼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장남은 동원산업 직원 시절 아들임을 숨기고 원양어선에 태웠다. 차남은 창원공장 생산직원부터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가장 바쁜 현장을 경험하게 했다. 두 아들 모두 약 11년간 녹록지 않은 경영훈련을 받은 뒤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렇게까지 시킨 이유는 리더가 현장을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장을 잘 알아야 정확한 현황 파악과 지휘가 가능하고, 부하직원들도 현장을 아는 리더의 말을 존중한다. 한 가지 더 강조한 건 정도(正道)다. 마지막으로 공부하라고 강조했다. 실력이 있어야 산다. 최근 우리 사회가 '오너 프리미엄' 대신 '오너 리스크'가 부각돼 안타까울 뿐이다.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이유는.

▷사회가 스피드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를 쫓아가기엔 난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동원그룹의 미래는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때가 됐다. 우리 사회에 큰 폐를 끼치지 않는 회사로 성장시킨 것만으로도 내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한가하진 않을 거다. 이젠 동원육영재단을 통해 봉사활동에 매진할 생각이다. 돈이 안 되더라도 재밌는 걸 하며 살아가고 싶다.

―50년 뒤 동원그룹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50년 뒤에도 동원그룹이 정도경영 기업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국가와 국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데 기여해서 "우리나라에 동원그룹이 있어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참치캔 신화로 30위권 그룹 일궈…사업보국 강조한 '재계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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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 동원호에 승선해 어선을 살펴보는 젊은 시절의 김재철 회장. [사진 제공 = 동원그룹]


국내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유일한 실습 항해사였던 청년은 약 3년 만에 최연소 선장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세계 수산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됐고, 그가 만든 회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활기업(동원그룹)과 금융기업(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재계의 신사'로 불린다. 창업 후 50년간 정도경영을 추구하며 얻은 별명이다. 김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 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했으며, 1991년에는 대기업 오너 가운데 처음으로 거액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해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증여세 자진 납부로 다른 기업인들에게서 핀잔을 듣기도 했고, 세무당국 조사도 받았다. 국세청은 "기업인이 세금을 자진 납부할 리가 없다"며 김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훨씬 많은 지분을 위장 분사했을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탈세 사실이 없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지자 국세청은 김 회장 일을 모범 사례로 적극 알리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지금의 동원그룹을 만든 가장 큰 사건으로 '참치캔 출시'를 꼽았다. 1958년부터 20여 년간 참치를 잡아 수출하던 김 회장은 국내 참치 소비량이 적은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후 1982년 참치캔을 출시했다. 당시 참치는 국민에게 생소했기 때문에 등산로나 야유회 등지에서 참치김치찌개 등 시식회를 열어 홍보에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참치캔은 현재 연간 3억캔씩 소비되는 국민식품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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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의 추진력은 인수·합병(M&A) 때도 드러났다. 2008년 발발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어수선했을 때 김 회장은 앞서 참치캔 사업에 영감을 준 스타키스트를 3억6300만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스타키스트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룹 내부에서는 인수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한 후에 같은 기회가 또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며 "내가 책임지겠으니 개척자 정신을 갖고 도전해보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동원그룹 품에 안긴 스타키스트는 혹독한 체질 개선을 통해 흑자경영을 이뤄냈고 미국 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김 회장은 인재 육성에도 관심이 많다.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게 김 회장 철학이다. 이를 위해 원양어선 선장 시절 고향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건네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보유 중이던 동원산업 지분 10%를 출자해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빈국이었던 시절에 젊은 날을 보내며 "사업보국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그 일념으로 동원그룹을 사회필요기업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 김재철 회장은…

△1935년 전남 강진 출생 △1958년 부산수산대 어로학과 졸업 △1963년 동화선단 선장 △1969년 동원산업 설립 △1978년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1979년 동원육영재단 이사장 △1982년 동원증권 사장 △1989년~ 동원그룹 회장 △2003~2004년 동원금융지주(현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정리 = 김기정 기자 /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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