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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사회적대화 끈 놓지않는 김주영 한국노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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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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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도로를 점거하는 노동운동이 공감받지 못하는 시대다. 길 가는 시민들은 시위 참가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는지 따져 보기도 전에 외면한다. 내 살길 찾기 바빠진 세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이 근로자 삶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노동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를 대표해 노동 이슈를 이끌고 가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58)이다. 노동 의제를 다루는 사회적 대화가 틀어질 위기 때마다 김 위원장이 역할을 했다. 무산될 뻔했던 '올해 1호 노동 안건'인 탄력근로제 합의 때에는 논의 시한을 약 4시간 앞두고 모습을 드러내 파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갈아엎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각종 노동 현안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다뤄야 할 노동 이슈,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인상으로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본인 주장을 분명히 밝혔다. 한번 시작한 말은 중간에 끊기더라도 놓치지 않고 이어갔다. 끈질기고 집요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매일경제

―노동운동 모습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지금 노동문화는 천편일률적이고 경직돼 있다. 머리띠 두르고, 구호 외치고, 발언하고, 투쟁사 읊는 형태다. 집회문화를 바꿔 보려고 토크콘서트도 해보고,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시도도 했다. 노동운동에서 외치는 말들이 길 가던 사람들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 사람들도 '내 이야기인데'라고 생각해 집회에 참여하고 같이 구호를 외치는 노동문화로 바꾸고 싶다. 워낙 오랫동안 이어져온 부분이라 틀을 바꾸려는 시도가 크게 진전을 이루진 못했지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못 받는 것 같다.

▷최근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우리 세대는 불만이 있어도 참고 지나갔다면, 요즘 세대는 표출해 버린다. 세대 간에 맞지 않는 문화들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따라가야 할 필요도 있다. 억지로 가르쳐주고 문화를 바꾸려고 해도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경험이 젊은 사람들에게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고, 지나치면 '꼰대'가 된다. 노동에 관해서도 그렇다. 요즘 노동조합에 대한 젊은 사람들 관심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무용론과 해체론이 나오는데.

▷그런 주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관계가 다른 세 주체(노사정)가 서로 생각을 좁히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매우 어렵다. 합의 내용이 세 주체가 모두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 대화 말고 투쟁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인가. 대화가 생략되면 정부와 국회의 일방통행과 극한 투쟁만 남는다.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본다. 과거 노사 당사자가 배제된 국회 합의 내용을 보면 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가 전제된 것이 꽤 있었다. 노사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리할 수 있는 건 노사가 하는 것이 좋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에 여성·청년·비정규직 근로자위원들이 불참하고 있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처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다 보니 부담감이 너무 커서 그런 것 같다. 경사노위도 이들을 설득하는 데 서툴렀다. 한국노총은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겠다. 단시간에 결론을 보려고 서두르진 않겠지만, 앞으로 중요한 현안들을 다뤄야 하는 만큼 여성·청년·비정규직 근로자 대표들도 취약계층 노동자 권익 보호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로 회의에 임했으면 좋겠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노사 간 논의가 교착 상태인데.

▷노사가 갈등하고 각을 세울 문제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도 약속했고, 대통령 공약에도 있었다. 그런데 사용자단체가 요구하는 내용들은 ILO 기본 협약과 관련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측 방어권은 이미 국제적 기준을 넘어선다. 대표적으로 손배·가압류 제도 남용이 그렇다. 합법적 파업에도 손배·가압류를 남용해 원천적으로 파업을 봉쇄하기도 한다. EU의 무역보복으로 인한 불이익은 사용자가 받을 수 있고, 그 여파는 노동계로 온다. 기왕 논의를 시작했으니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돼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저임금이 예년에 비해 좀 더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지난해 5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산입범위를 넓혀 놔서 노동자 관점에선 크게 올랐다는 인식이 없다.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최종적으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노동자 간에 충돌이 심하게 일어났다. 을끼리 싸우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정책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원·하도급 불공정 거래 문제를 이번 기회에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많이 벌면 밑에까지 내려와야 우리 노동자에게도 골고루 분배된다.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고, 최일선에서 부딪치는 현상이 나온다.

―탄력근로제 노사 합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당부하고 싶은 점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피할 수 없다면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 건강권 문제와 임금 보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남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도입 요건도 강화해야 했다. 이 때문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에 참여해 합의한 것이다. 국회에서 노사가 어렵게 마련한 합의안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앞으로 사회적 대화는 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결국 대립적 노사 관계가 더욱 힘을 받을 텐데, 국회가 원하는 것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합의된 내용보다 노동 조건이 후퇴하지 않도록 합의 정신을 존중해 법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ILO 등 현재 노동 의제들이 마무리된 후 그다음으로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확산될 플랫폼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법의 보호를 받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 놨는데 통상임금 산입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해 나가야 한다. 현안이 너무 많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사회 노동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는가.

▷전기차 보급으로 인한 부품사 일자리 감소, 인터넷 은행·모바일 뱅킹 확산으로 인한 금융 산업 고용 축소, 카풀 서비스로 인한 택시 산업 위기 등 산업별로 고용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안전망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미래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거나 우려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노동계는 우선 급속히 확산되는 플랫폼 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조직화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법·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외국 사례를 수집해 한국에 적용 가능한지 타진하겠다. 미래 노동에 대한 대비는 노동계 혼자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먹거리들을 어떻게 개발하고, 노동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정부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노사정이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대법원에서 육체노동 가동 연한을 65세로 판단했다. 장년층 일자리 창출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나이에 맞추는 방식으로 조정해 고령자 일자리와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국민 노후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의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 또한 직장 내에서 은퇴자의 경험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 노사갈등의 시작은 사소한 오해서 출발…대화통해 예방해야

1986년 한국전력에 입사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그로부터 10년 뒤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사내 불합리한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노동운동 일선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노동운동에 몸담은 지 23년 지났다. 가족이 싫어하진 않나.

▷와이프가 싫어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을)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도 사회적 대화로 민감한 노동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가.

▷2000년대 초반 구조조정특별법이 만들어져 한국전력 배전 분할 정책이 나온 적이 있다. 당시 한국전력 노조위원장으로서 이 정책에 반대했다. 반대만 한 것이 아니라 연구단을 구성해 외국 사례를 조사하고 현장 목소리도 들었다. 갈등이 점점 커지자 사측과 정부도 공동연구단 결론을 따르기로 했다. 배전 분할은 기대편익이 불명확하고 공급 불안정과 요금 폭등이 우려된다는 결론이 나와 결국 한전 배전 분할 정책은 중단됐다.

―갈등이 심할 때는 양쪽을 오가면서 중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사소한 문제로 갈등이 커진다. 대화를 통해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를 안 하면 문제점이 뭔지, 속마음이 무엇 때문에 틀어졌는지 알 수 없다. 나도 경험해 봤지만 이런 상황까지 가면 노동자로서 정당한 말을 해도 사용자 측이 '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며 일축해버린다.

―임기가 내년 1월까지다. 이후 계획은.

▷현재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열심히 하고 난 뒤에 다시 평가를 받으면 된다. 다음 문제, 다른 길에 대해선 그 이후 일이다.

―노동계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느 곳이든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이 다양하게 포진했으면 좋겠다. 그분들은 노조의 리더로서 노사 간 교섭도 해봤고 때로는 좌절도 성취도 해봤다. 사회적으로 농축된 경험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좀 더 많이 사회에 진출해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잘 풀어냈으면 한다.

▶▶ He is…

△1961년 경북 상주 출생 △원광대 전기공학과 △건국대 산업대학원 전기공학 석사 △1986년 한국전력 입사 △2002년 한국전력 노조위원장(4선) △2012년 전국공공산업노조 위원장(3선) △2017년~현재 제26대 한국노총 위원장

[정석우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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