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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우리는 자궁이 아니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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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부분적 허용 모자보건법 "생명 위계화" 지적

"여성의 건강권 위한 의료 행위로 봐야"

"공공연하게 얘기 되지 않는 보편적인 경험"

아시아경제

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 '낙태죄 위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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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가임기 여성 지도를 기억하십니까. 그 지도는 여성을 단순히 자궁을 가진 존재로 여기고 임신·출산만 하는 존재로 전락시켰습니다. 여성을 자궁으로 보고 있는 정부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요? 지금의 출산 지원 정책은 정상 가족에게도 부족합니다. 아이를 낳으라 강조하면서도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 사고 친 여자가 되는 현실, 바람직합니까? 결혼 여부와 상관 없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고,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궁이 아닙니다."


30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등 65개 단체가 주최한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 집회에서 '전남대 페미니스트 모임 F;ACT' 소속 수진씨가 한 말이다.


◆여성의 몸, 온전히 여성의 것=궂은 날씨에도 1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관련해 다양한 발언들이 나왔다. 여성의 몸은 온전히 여성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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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우생학적 사유가 있는 사람들은 모자보건법으로 낙태를 허락하고 있는데 정상과 비정상, 부적격자를 선별하고자하는 국민으로서의 부적격자를 선별함으로써 생명을 위계화 하고 있다"며 "여성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 내 몸이 이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유와 평등이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괄적 성교육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소속 중학교 3학년 김모 중학생은 "중학교 1, 2학년만 되어도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배우는데 낙태는 못 하게 한다"며 "제 몸을 제 미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양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청소년들이 배를 발로 찬다거나 거꾸로 매달리고 담배와 술을 억지로 하는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김 양은 "기차역 화장실에 영아를 버리고 간 사건이 있었는데 사회는 잘못을 도주한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며 "어떻게 임신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여성의 인권 보장이나 안전조차 보장하지 않고 여성이 영유아만 잘 키우길 원한다"고 했다. 이어 "제 몸 속 세포를 포기한다고, 제 모든 행복을 위해 태아를 포기한다고 해도 처벌 받지 않은 사회에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여성 건강권 위한 의료 행위=낙태를 여성의 건강권을 위한 의료 행위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김민지 씨는 "국내에선 임신중지를 위한 안전한 약물 처방 등도 안 돼 한국 여성들은 해외 비정부기구(NGO)에서 몇 주를 기다려 약을 받거나 브로커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약을 사서 복용하기도 한다"며 "임신을 중지하고 싶어서 임신을 하는 여성은 없고 누구든 언제든 불가피하게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혜진 공공운수조노 교육공무직본부 사서분과장은 "사회경제적 어려움 여부를 추가시키는 꼼수가 검토되고 있다"며 "빈곤한 사람들에게만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낙태를 하기 위해 당사자가 스스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임을 증명하고 제3자에게 또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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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하게 얘기 되지 않는 보편적 경험"=이날 집회에는 여성은 물론, 남성, 남녀 커플 등이 참석했다. 주태영(17·남) 학생은 "예전에는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로만 생각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출산은 본인의 선택이 되어야 하지 무조건 낳아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았다"며 "한 사람이라도 집회에 참가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정 모(27·여)씨는 "(낙태에 대해) 공공연하게 얘기 되지 않는 보편적인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 이 모(20·여)씨는 "대부분 나라에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모인 참가자들은 집회 이후 헌법재판소까지 행진했다. 행진을 마친 후 "낙인과 차별을 해소하고 모두의 재생산권이 보장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며 선언문을 낭독했다.


◆낙태죄 폐지, 생명권 위협=한편 이날 비슷한 시각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도 열렸다.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 등 41개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위헌 판결이 내려졌을 때 일어나게 될 사회문화적, 의료적, 윤리적 파장은 엄청나고 더 나아가 인간 생명에 대한 의식조차 바뀌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가장 작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 태아들의 생명권이 가장 안전해야 할 모태의 뱃속에서 위협받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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