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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만물상] '결혼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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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은퇴한 선배 지인을 최근 만났다. 아들 둘 다 직장 다니고 있으니 걱정거리라곤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족들 무탈하시냐"는 인사에 한숨부터 내쉰다. "애들이 결혼을 안 해서…." 큰아들이 서른일곱, 둘째는 서른셋, 아들 둘 나이 합치니 노부모 나이에 맞먹는 70이다.

▶작년에 우리나라 혼인은 25만7622건으로 46년 만에 제일 적었다. 얼마나 짝을 맺는지 객관화하려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나타내는 '조(粗)혼인율'을 봐야 한다. 이 수치가 1980년만 해도 10.6건이었는데, 지금은 반 토막을 밑도는 5.0건이다. 1000명당 이혼 건수인 '조(粗)이혼율'도 2.1명이나 된다. 결혼 안 하는 청년에 결혼 못 하는 청년을 보태고 여기에 이혼까지 더하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결혼 파업' 수준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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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여부를 두고 '미혼' '기혼'으로 나누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미혼 말고 '비혼(非婚)'이라 해야 결례가 안 되는 세상이다. 비혼 지향 생활공동체라 이름 붙인 주거 공간도 생겨났다. "나 자신과 결혼하겠다"며 비혼식에 친구를 초대하는 신(新)풍속도도 있다. 이런 사람을 '자발적 비혼주의자'라 부른다. 서구 젊은이처럼 결혼하지 않고 자유의지로 독신을 선택하는 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자발적 비혼주의는 10~2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나머지 대부분은 결혼하고 싶어도 못 하는 '비자발적 비혼주의자'라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결혼도 편익과 비용을 따져 선택이 일어나는 거대한 '시장'으로 봤다.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뺀 삭막한 분석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의 급격한 혼인율 하락을 설명하는 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해마다 30만건을 웃돌던 혼인이 지난 7년 내내 감소하면서 관련 통계도 뚝 떨어졌다. 결혼이라는 틀에 들어가 얻게 되는 편익에 비해 비용이나 부담이 현저히 커지니 혼인율도 내리막이고, 결혼 연령도 점점 늦어진다.

▶날로 악화되는 청년 실업, 살인적인 집값, 번 돈 대부분을 자녀 사교육에 올인해야 하는 부실한 공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이니 상당수 젊은이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선택 앞에서 점점 더 머뭇거리고 회피하게 된다. 결혼조차도 양극화가 벌어진다. 결국 '비자발적 비혼주의' 젊은이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우리 미래를 판가름 낼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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