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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특파원 리포트] 중국 예술가, 애국자냐 배신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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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버락 오바마(왼쪽)는 2017년 가을 전직 미국 대통령 신분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글로벌교육정상회의(GES)'에 참석했다가 류츠신을 만나서 그의 차기작에 대해 질문하고 책에 서명도 받았다./CFI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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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이냐. 중국공청단 국장급 간부라는 얘기가 돌더라.”

지난달 16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과학소설 작가 류츠신(劉慈欣·6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류츠신은 숨도 안 쉬고 “당원 아니다. 다른 당·정 직책도 없다”고 대답하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서방에서 류츠신이 중국 선전에 이용된다는 의혹을 의식한 질문이었지만, 왠지 ‘사상 검증’에 나선 조사관 같다는 민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중국서 활동하는 유명 인사들은 언제라도 ‘홍색 딱지’가 붙을 운명이다. 고유의 작품 철학을 추구하는 예술가나 오로지 금전 이득을 원하는 기업인일지라도 외부에서는 중국 당국의 ‘선전 도구’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신(新)냉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의 모든 작품과 상품이 자유 진영에서 경계 대상이 됐다. 삼체는 과거 오바마가 극찬한 작품이지만, 최근 이 소설을 원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가 제작됐을 때는 미국 정치권의 반대에 직면했다.

같은 논리로 해외에서 인정받는 중국인 예술가란 ‘반체제 인사’와 동의어가 되고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아이웨이웨이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대형 전시를 열지만, 고향인 중국 내에서는 전시가 금지돼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중국 여성작가 찬쉐 관련 검색어를 소셜미디어에서 금지했다. 대만 작가 리아오는 “중국인은 조국을 배신하지 않으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중국은 최근 10년 동안 예술가의 영감과 자본가의 수완을 국가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했다. 중국 영화감독 천카이거는 문화대혁명을 비판한 1993년 영화 ‘패왕별희’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애국 영화를 만든다. 6·25전쟁에서 중국 인민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 ‘장진호’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정부 비판 발언으로 주목받았지만, 각종 불이익을 받은 이후에는 잠행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당국이 부적절한 발언의 공개를 이유로 투옥한 작가는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섰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 ‘펜 아메리카’의 최신 보고서에서는 중국에서 공개 성명 등을 이유로 수감 생활을 하는 작가가 10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중국의 창작자와 사업가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대해야 하나. 무작정 배척하자니 새로운 차별을 낳고, 포용하자니 마음 한편의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렇게 만리장성을 둘러싼 의심의 벽은 높아지고 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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