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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시선2035] 지금 이 분노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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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결국 장자연은 어떻게 되는 거야?”

최근 만난 모임의 대화는 모두 비슷하게 흘러갔다. 빅뱅의 승리가 연루된 ‘버닝썬 사건’으로 시작해 ‘정준영 동영상’을 거쳐 장자연 사건으로 향하는 식이다. 분노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다르지만, 연령 및 성별과 무관하게 통용된다.

담당 기자로서 최대한 의견을 배제하기 위해 숨을 고를라치면, 옆자리 친구는 물론 옆 테이블에서도 질세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쏟아낸다. 나도 이만큼 아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것. 결국 본인이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대화는 중단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다.

이 같은 확증편향은 불특정 다수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편 가르기가 수월한 덕분이다. 뉴스 댓글난만 봐도 그렇다. 댓글 대다수는 기사와 무관하다. ‘이게 더 중하다’ 같은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처음엔 불만이었을 것이다. 2009년 장자연의 죽음도, 2016년 정준영 몰카도 수사 결과는 석연치 않았다. 특히 장자연 사건은 이번이 세 번째 재수사로, 대검 조사 기한은 네 번째 연장됐다. 어디 그뿐일까. 연예인 혹은 특권층이 개입된 사건은 어김없이 물음표를 남겼다.

그렇게 반복된 경험을 통해 불신은 쌓여갔다. 수사 기관을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자신이 입증한 정보만 믿게 된 것. 분노는 자연히 그 안에 포함된 모든 대상을 향한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 한 명이 사과하고 나면 다음 사과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 분노가 해소되기는커녕 증폭돼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사건을 두고 “사회특권층 비리”라 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반복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이만큼의 사회 분열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테니 말이다. 지금의 분노 에너지를 잦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의 경험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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