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
최근 만난 모임의 대화는 모두 비슷하게 흘러갔다. 빅뱅의 승리가 연루된 ‘버닝썬 사건’으로 시작해 ‘정준영 동영상’을 거쳐 장자연 사건으로 향하는 식이다. 분노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다르지만, 연령 및 성별과 무관하게 통용된다.
담당 기자로서 최대한 의견을 배제하기 위해 숨을 고를라치면, 옆자리 친구는 물론 옆 테이블에서도 질세라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쏟아낸다. 나도 이만큼 아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냐는 것. 결국 본인이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대화는 중단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다.
이 같은 확증편향은 불특정 다수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편 가르기가 수월한 덕분이다. 뉴스 댓글난만 봐도 그렇다. 댓글 대다수는 기사와 무관하다. ‘이게 더 중하다’ 같은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처음엔 불만이었을 것이다. 2009년 장자연의 죽음도, 2016년 정준영 몰카도 수사 결과는 석연치 않았다. 특히 장자연 사건은 이번이 세 번째 재수사로, 대검 조사 기한은 네 번째 연장됐다. 어디 그뿐일까. 연예인 혹은 특권층이 개입된 사건은 어김없이 물음표를 남겼다.
그렇게 반복된 경험을 통해 불신은 쌓여갔다. 수사 기관을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자신이 입증한 정보만 믿게 된 것. 분노는 자연히 그 안에 포함된 모든 대상을 향한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 한 명이 사과하고 나면 다음 사과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 분노가 해소되기는커녕 증폭돼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사건을 두고 “사회특권층 비리”라 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반복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이만큼의 사회 분열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테니 말이다. 지금의 분노 에너지를 잦아들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 회복의 경험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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