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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카드사 vs 대형가맹점, 수수료율 놓고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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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통신사·대형마트 등 카드수수료율 인상안 거부
카드사에 힘 실어준 금융당국 "부당 행위 가능성 검토"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율 인상을 놓고 신용카드업계와 대형가맹점들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005380)기아자동차(000270)가 수수료율 인상을 강행하면 가맹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이동통신업계와 항공업계, 대형마트·백화점 등도 카드사들이 제시한 카드수수료율 인상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28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이동통신사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일부 대형가맹점이 카드수수료율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추가 협상을 요구하는 공문을 잇따라 카드사에 보냈다.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율 인상은 3월 1일자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형가맹점이 반발하면서 추가 협상이 불가피해졌다.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율 인상은 작년 말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정부가 카드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면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가맹점을 대폭 늘렸고, 이에 따라 카드사들의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지자 대형가맹점에 대한 카드수수료율 인상이 합리적인 범위에서 가능하도록 퇴로를 열어줬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현재 1.8~2.0% 수준인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을 2.04~2.25%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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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이 작년 11월 26일 카드수수료 개편방안 당정협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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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형가맹점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카드수수료율 인상이 카드사의 계획대로 진행될 지 알 수 없게 됐다. 카드수수료율 인상안을 통보받은 가맹점이 한 달 안에 이의를 제기하면 협상을 통해 최종 인상분이 정해지는데, 최근 대형가맹점들이 줄줄이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같은 자동차 제조사와 이동통신업계, 대형마트·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다. 카드사들은 이들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을 0.1~0.3%p 정도 높이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이에 일부 대형가맹점은 계약 해지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카드사의 요구대로 수수료율이 오르면 이들 업종은 각각 수백억원씩의 가맹점 수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형가맹점들은 가뜩이나 최근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카드수수료율 인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강제 휴무, 최저임금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사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적지 않은 금액이 비용으로 사라지고 있다"며 "중소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 인하로 인한 손실을 대형가맹점에 전가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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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카드업계의 상황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정부의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 탓에 올해부터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입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맹점 수수료가 카드사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걸 감안하면 큰 타격이다. 한 카드사 대표는 "과거에 얼마나 많은 수익을 냈든 올해부터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고 할 정도다.

카드업계에서는 당분간 카드사와 대형가맹점들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3월 1일부터 새로운 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하지만, 각 카드사와 가맹점의 계약 기간에 따라 수수료율 적용을 늦출 수 있는 만큼 추가 협상의 여지는 충분하다는 게 카드업계의 관측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가맹점 수수료율 인상을 놓고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이 여러 차례 충돌한 적이 있지만 결국 중간 정도에서 협상을 마무리했다"며 "남아 있는 계약기간 동안 추가 협상을 계속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드업계에서 가장 관심있게 보는 건 이동통신업계의 대응이다. 이동통신사와 일부 대형 카드사가 체결한 가맹점 수수료율 계약이 3월에 만료된다. 이 때문에 카드수수료율 인상에 반발하고 있는 대형가맹점 중에서 이동통신업계의 카드수수료율 인상안이 가장 먼저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협상 결과에 따라서 다른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 인상 구간도 대략적이나마 정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카드업계의 관측이다.

이동통신업계는 카드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은 대표적인 대형가맹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이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에 제출한 '주요업종의 가맹점별 수수료 및 마케팅 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2017년 한 해동안 KT(030200)에 제공한 마케팅 비용이 1364억원이었는데 KT에서 얻은 수수료 수입은 1168억원에 그쳤다. 수수료 수입으로 번 돈보다 마케팅 비용으로 쓴 돈이 더 많았던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요구하는 게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고치라는 것인 만큼 카드사 입장에서도 이번에는 대형가맹점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이 변수가 될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 인상 거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행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의 수수료율 인상 협상이 마무리되면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나 이동통신사, 대형 유통업체, 항공사 모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업종인데다 그룹 오너 리스크가 엮여 있다. 표면적으로는 금융당국이 앞장서고 있지만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 것을 감안하면 대형가맹점이 끝까지 버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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