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개 농장이여, 안녕…닥스훈트 ‘엘사’의 여행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애니멀피플]

식용견·강아지 번식장 겸한 개 농장… 동물보호단체 HSI, 200여 마리 구조 현장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월13일부터 2주간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 충남 홍성에 있는 개 농장에 사는 200여 마리의 개를 구조했습니다. 이곳은 식용견 농장과 강아지 번식장을 겸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개들은 식용견의 경우 1년 6개월 정도 키워져 도축업자에게 팔리고, 품종견 강아지의 경우 태어난 지 약 1달 만에 경매장으로 넘어갔습니다.

농장주는 “스스로 부끄러워”농장을 폐쇄하고 전업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매일 20~30마리의 개들이 홍성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해 미국과 캐나다 지역 보호소로 옮겨졌습니다. 개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날 예정입니다. 2월20일 현장에서 만난 닥스훈트 ‘엘사’의 시점으로 ‘견생 2막’을 시작하는 개들의 여정을 따라가 봤습니다.

내 이름은 ‘엘사’입니다. 현대판 눈의 여왕, ‘겨울왕국’의 그 엘사냐고요? 저는 오늘 아침까지 충남 홍성에 있는 한 개 농장의 철창에서 살던 2살 닥스훈트입니다. 저는 털이 짧고 피부가 얇아 추위를 많이 탑니다. 엘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몸이 오들오들 떨리네요.

오늘은 정말 놀라운 하루였어요. 지금 저는 캐나다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이에요. 이른 아침, 23마리의 친구들과 함께 철창에서 나와 큰 트럭을 타고, 다시 비행기를 탔어요. 저와 제 친구들이 시작한 긴 여정은 석 달 전, 농장주 아저씨가 개 농장 운영을 포기하고 한 동물보호단체에 구조를 요청하면서 시작됐죠.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엘사’, 나에게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 2월13일,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 농장을 찾아와 철창 안의 개들을 데려나갔어요. 우리 농장은 식용견 농장과 강아지 번식 농장이 같이 운영되는 곳이었어요.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곳이죠. 농장주 아저씨는 8년 전 식용 개 농장을 먼저 시작했어요. 그리고 ‘개값’이 떨어지자 좀 더 돈이 된다는 강아지 번식 농장을 시작했죠. 아저씨는 이전에 돼지 농장을 했는데, 크게 실패를 해서 주변의 권유로 개를 키우기 시작했대요.

우리 농장에선 진도 믹스견과 도사 믹스견을 비롯해 저 같은 닥스훈트, 치와와, 웰시코기, 시베리안 허스키, 푸들 등 다양한 종의 개가 같은 환경에서 사육됐어요. 1천여평의 부지에 약 200마리의 개가 함께 살았죠.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이라는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의 입에서 우리를 “구조한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어요. 이 사람들은 석 달 전에도 우리 농장에 찾아왔는데, 평소 말수가 적은 농장주 아저씨는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살아온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기도 했어요. 그날로 농장을 휘감은 공기가 미묘하게 변한 것 같아요. 농장주 아저씨는 그때부터 3개월간 저희를 더는 번식시키지 않고, 저희가 멀리 떠나는 그 날까지 보호하며 지내기로 했어요.

아저씨와 사람들은 농장을 정비해 몸이 약한 친구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모견들, 어린 강아지들을 가장 멀쩡한 견사에 모았어요. 우리는 모두 뜬장에서 살았어요. 겨울이 오면 아저씨가 낡은 옷가지 따위를 가져다 철창 바닥에 깔아주곤 하셨지만, 아저씨는 몰랐어요. 옷가지에 물이나 오줌이 묻으면 더 차갑게 느껴진다는 걸. 그걸 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옷가지를 걷어내고 짚을 가져다 푹신하게 깔아주었어요. 덕분에 올겨울은 태어난 이래로 가장 견딜 만 했죠.

며칠 겪어보니 그다지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들은 철창 사이로 처음 먹어보는 간식을 내밀었어요. 우리를 꺼내 양팔로 꼭 안아주고 볼을 비비기도 했어요. “아이, 착하네”, “배는 고프지 않니?”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기도 했어요.

“엘사!” 누군가는 저에게 처음 이름이란 것도 불러줬어요. 오팔, 놀라, 히더, 로건…. 이름이라는 게 주어지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도 무언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끝없이 강아지를 낳지 않아도 되는 삶을 향해

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강아지 번식 농장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서 나는 ‘모견’이라고 불렸고, 이 농장에 올 때도 같은 목적으로 팔려왔어요. 우리를 구조하러 온 사람들은 저를 안으며 다행이라고 얘기했어요. 더는 아이를 품고 낳기를 반복하며 고생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어요. 제가 낳은 강아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낳은 지 한 달이 좀 넘어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가 버렸어요. 아이들은 경매장을 거쳐 전국 각지의 펫숍으로 갔겠지요. 알다시피 쉽게 살 수 있으면, 버려지기도 쉬워요. 저는 여기에 갇혀 끝없이 아이를 낳고 빼앗기는 삶과, 잠깐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버려지는 삶 중에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어요. 물론 좋은 가족을 만나 사랑으로 길러지는 아이들도 많을 테지만요.

농장주 아저씨가 우리가 트럭에 실리기 전, 마지막으로 이동장 문틈으로 간식을 건네줬어요.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나선 신문사 기자가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떠냐고 묻자 아저씨는 “시원섭섭하다”고 대답했어요. 아저씨는 이 농장을 폐쇄하며 “식용견 농장과 강아지 번식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고,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어요. 수익이 급감한 것도 폐쇄에 일조했죠. 식용견 값도 내려갔지만, 식용견 대안으로 길렀던 강아지의 가격도 급감한 적이 있어요. 아저씨는 “개물림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리당 10만원 선에 경매장에 팔려가던 강아지들이 1만원까지 떨어졌다”고 말했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 돼지를 키웠다는 아저씨에게 동물은 늘 그의 돈벌이 수단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저씨를 싫어하지 않아요. 철창 앞에서 부르면 쫓아가고 밥을 줄 때 꼬리를 흔들기도 했죠.

그렇게, 저도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아저씨에게 안녕을 고하고 약 2시간을 달려 인천국제공항이란 곳에 도착했어요. 공항 사람들이 나와 검역을 했어요. 우리는 출국 한 달 전에 광견병 검사와 각종 예방 백신을 맞아야 해요. 단체 사람들이 미리 확인한 건강 상태 검진서 등 서류를 보내둔 덕분에 검역은 외관상 건강 상태 확인과 이름 확인 등 간단하게 끝났어요.

다시 이동해 우리가 도착한 곳은 화물터미널이라는 곳이었어요. 생전 처음 듣는 기계 소음과 자동차 소리, 차멀미 때문에 친구 중 몇몇은 굉장히 지쳐 보였어요. 특히 농장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 10개월 된 진도 믹스견 삼 형제 매디슨, 로건, 파커는 놀라울 정도로 긴장한 것 같아요. 로건은 농장에 살 때 큰 덩치로 우쭐대는 친구였는데 내내 이동장 구석에서 코를 파묻고 얼굴을 들 생각도 하지 않네요. 로건, 힘을 내렴.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면’ 박스와 함께 화물칸에서

단체 사람들이 이동장 문을 열고, 우리를 하나하나 안아주며 배변 패드를 깔고, 물통과 사료통을 달아줬어요. 사료를 한가득 붓고, 이동 중에 승무원들이 줄 수 있게 여분의 사료를 한 팩씩 이동장에 붙였어요.

우리 옆으로 ‘강원 감자’, ‘신라면’ 따위가 쓰인 종이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어요. 우리는 저 상자들과 함께 12시간이 넘게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캐나다 몬트리올이라는 곳으로 간다고 해요. 먼 훗날 “한때 우리 개들이 짐짝처럼 화물칸에 실려 여행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하게 될 날도 올까요.

몬트리올에 도착하면, 거기서 다시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여러 동물단체로 이관된대요. 우리를 이관한 단체 사람들이 입양 공고를 내고, 각 가정으로 분양을 보낸다고 하네요. 북미에서는 개를 사고파는 문화가 없어 구조된 동물의 입양률이 아주 높대요. 이 단체에서 그동안 한국의 13개 개 농장에서 구조해 보낸 개들 가운데 98%가 새 가족을 찾았다고 해요. 그쪽 나라 사람들도 품종견을 선호하는 성향은 있어서, 특히 우리 같은 친구들은 더 입양이 빠르다고 해요. 나는 어떤 가족을 만나게 될까요. 넓은 곳에서 실컷 뛸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것일까요.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좋아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해요.

사람의 손길이 어떤 느낌인지, 체온을 나눈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처음으로 알려줬던 단체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이곳에서의 마지막 인사인가 봐요. 개 농장이여, 안녕.

홍성·인천/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