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베트남 방문 계기로 보는 조종사 파병 외교
66~67년 베트남에 조종사 파병, 14명 전사 북한
73년 4차 중동전 때 조종사 1개 중대 이집트로
기밀해제 모사드 1급 비밀문서 “북한 조종사 30명”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선물 스커드-B로 개발 시작
북한, 역설계해 미사일 제작과 수출 본격 시작
사다트는 이스라엘 평화조약으로 노벨평화상
북 ,90년대 설계 입수, 기술자 고용해 개발박차
연속 발사로 위협하며 미국을 협상장으로 불러
오는 27~2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전 당시 북한의 미그기 조종사 파병 외교가 새삼 관심을 끈다. 북한은 1967~68년 같은 공산 진영인 북베트남에 무기와 물자는 물론 소중한 군사 자산인 조종사까지 보내 도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베트남 방문에서 이를 특히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조종사 파병 외교로 얻은 게 상당하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2017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스커드 ER 미사일 4발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 조선 중앙TV는 이날 발사 현장에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발사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사의 시작은 73년 4차 중동전쟁 당시 미그기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이었다. 북한은 이를 역설계하고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 앞서 북한은 67~68년 북베트남에도 조종사를 파병했다. 북한 공군 조종사들은 당시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 상공을 맡아 미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오는 27~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바로 그곳이다. [사진 노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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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28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베트남 하노이의 서북부 박장성에 위치한 북한군 공군 조종사 묘터에 지난 13일 관리자가 헌화하고 있다. 1967~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숨진 북한군 공군 조종사 14명이 묻혔던 곳으로 북한은 2002년 유골을 모두 가져가면서 지금은 묘터만 남았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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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베트남전에 파병한 공군의 모습. [연합뉴스] |
미국 윌슨센터가 2011년 12월 공개한 조사 결과는 이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67~68년 87명의 공군 조종사를 북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조종사들은 하노이 인근 켑 비행장을 근거지로 하노이 대공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베트남과 북한은 2000년 처음으로 북한 공군 조종사가 베트남전에 파병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윌슨 센터에 따르면 북한 조종사들은 베트남 공군 소속 미그기를 몰고 미군기와 전투를 벌였으며 이 중 14명이 숨졌다. 이들은 처음엔 67년 하노이 부근 박장(北江) 성에 조성한 묘지에 묻혔다. 윌슨센터는 2007년 8월 베트남 신문이 “2002년 북한 당국이 조종사 유해를 모두 송환했지만, 묘지 터는 계속 관리되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3일 현장에서 묘터가 여전히 관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한 신형 스커드 미사일. [사진 노동신문] |
이스라엘 국립문서보관소가 최근 기밀 해제한 73년 모사드(해외정보국) 1급 비밀 전문에는 “이집트에 30명의 북한 조종사가 이집트 영공 방어에 참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전문은 그해 전쟁 발발 하루 전인 10월 5일 모사드 즈비 자미르 국장의 보좌관이던 페디 에이니가 골다 메이어 총리의 국방 비서인 위스라엘 리오르 준장에게 보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영어신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2017년 9월 29일 “당시 시리아와 이집트는 소련의 무기공급과 모로코·알제리·리비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팔레스타인해방기구·요르단 같은 아랍권에서 파병한 건 물론 심지어 파키스탄과 북한에선 조종사를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집트군 총사령관이던 사드 엘사들리 장군은 회고록에서 “당시 북한은 이집트에 20명의 조종사와 19명의 비전투 요원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조종사 숫자에서 모사드 정보와 약간 다르다.
이집트 군사박물관에 북한식 선전 그림이 걸려있다. 북한 작가들이 제작한 것이다. [중앙포토] |
북한 조국해방박물관에 걸린 선전화. 이집트 군사박물관의 작품과 흡사한 화풍이다. [중앙포토] |
이집트 군사박물관 |
북한이 1973년 조종사 파병 대가로 이집트에서 받은 스커드-B형과 동형의 미사일.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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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 2017년 8월 28일 자에 따르면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76년과 81년 사이에 서방에서 스커드-B로 부르는 소련제 ‘R-17 엘브루스 미사일’를 북한에 넘겨줬다. 76년은 사다트가 소련과의 우호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인 기술자를 추방한 해다. 이집트는 그 뒤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고 친미 노선을 걸었으며 이스라엘과 평화 노선을 추구했다. 사다트는 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그 대가로 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되찾았다. 사다트는 이 공로로 메나힘 베긴 이스라엘 수상과 함께 7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의 CNBC 방송은 2017년 8월 25일 “북한이 79년 또는 80년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을 처음으로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디플로매트의 보도와는 입수 시기가 약간 다르다.
19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 중 워싱턴 근처 게티즈버그 남북전쟁 공원을 방문한 사다트 대통령, 카터 미국 대통령, 이스라엘 베긴 총리, 다얀 외무장관(전쟁 때 국방장관) (앞줄 왼쪽부터). 이 협정의 공로로 사다트는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북한에 스커드-B 탄도미사일을 넘기면서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역사의 아니러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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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2013년 1월 12일 북한이 발사한 은하 3호의 로켓 기술이 50년대 소련이 개발한 스커드 미사일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VOA는 미국 과학자 단체 참여과학자연대(USC)의 로켓 전문가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를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그동안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에서 사용한 연료와 산화제를 이용해 미사일을 계속 개발해온 것으로 추정했는데 바다에서 건진 은하 3호 잔해에서 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이집트에서 구한 스커드-B에서 입수한 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오늘날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사진 노동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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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주장도 있다. 2004년 영국의 군사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북한은 93년 일본을 통해 러시아의 퇴역잠수함 12척을 고철로 구매했는데 선내에 남아있던 R-21 SLBM의 발사 시스템을 참고해 노동 1호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1호의 지상 발사형인 북극성-2호.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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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국을 베트남 하노이의 회담장으로 불러낼 수 있었던 힘의 기원은 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에 공군 조종사를 파병하면서 사다트 대통령으로부터 입수한 스커드-B 미사일인 셈이다. 북한 미사일 기술 축적의 시작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북한에 제공한 스커드-B 미사일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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