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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지평선] 정치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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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미국에 ‘갈 곳 없는 다리(bridge to nowhere)’라는 것이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효과에 대한 타당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말한다. 사연이 있다. 2005년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케치칸의 공항과 배로 10분 거리인 그라비나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다. 당시 케치칸 인구는 9,000명, 그라비나 섬은 50명. 미국 의회는 건설에 투입되는 예산 3억2,000만달러(약 3,600억원)를 전격 승인했다. 주민들이야 다리가 건설되면 매우 편리하지만 예산 규모가 엄청났다.

□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지역 유권자와 정치인이 야합하고, 다른 주 의원들이 슬쩍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주 의원들이 추진하는 무리한 프로젝트에 눈을 감는 조건이다. 건설 비용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연방 정부가 부담한다. 지역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지만, 연방 단위에서는 세금이 줄줄 샌다. 언론 등을 통해 프로젝트 내용이 알려지면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취소됐다. 그래서 ‘갈 곳 없는 다리’는 포퓰리즘에 영합한 국가 예산 낭비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 우리는 공항이 그런 방식이다. 새만금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사업비가 8,000억원이다. 수요와 경제성만 있다면 예산이 문제겠나. 하지만 청주ㆍ무안공항이 너무 가깝다. 김제공항 건설에도 480억원을 투입했으나 감사원이 “수요가 과다 예측됐다”고 지적해 2005년 공사가 중단됐다. 부산을 중심으로 다시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불쏘시개가 됐고, 2026년 개항 예정이던 김해신공항은 건설 전망이 되레 불투명해졌다.

□ 뿐만 아니다. 울릉공항 용역결과는 이르면 3월 말에 나온다. 예산이 6,300억원에 달한다. 흑산공항은 사업비가 1,833억원이다. 과연 이 많은 공항이 다 필요한 걸까. 국토부는 국가예산으로 공항을 짓고 운영까지 한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수요가 있거나 말거나 일단 유치만 하면 책임질 일이 없다. 지방공항이 적자투성이인 이유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공항건설 공약을 남발하고 지역에서는 환영 일색이다. 그래서 한화갑(무안)ㆍ김중권(울진) 공항이 탄생했다. 공항건설에 정치가 개입하면 ‘갈 곳 없는 공항’이 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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