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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Chicago in ‘시카고 Chicago’ 유명해질 수 없다면, 악명이라도 떨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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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절로 흔들어지는 ‘All That Jazz’, ‘Cell Block Tango’, ‘Roxie’, ‘Razzle Dazzle’, ‘Nowadays’ 등의 재즈 선율로 기억되는 영화가 바로 ‘시카고’다. 1920년대 관능과 욕망 그리고 폭력이 난무한 시카고를 배경으로 록시와 벨마, 두 스타 탄생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든다. ‘도대체 1920년대 시카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시카고의 1920년대, 그 지점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바로 재즈와,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마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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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재즈 경연장 & 건축물 박물관

1920년대 미국, 뉴욕도 아닌 시카고가 영화의 무대가 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금주법과 갱스터 그리고 관능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를 휩쓸던 자유주의에 대한 갈망의 장소로서 시카고는 적격이었다. 시카고는 미국의 동부 일리노이주에 있는 도시로 뉴욕, LA와 함께 미국 3대 도시로 손꼽힌다. 이곳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03년, 당시 디어본 요새에 약 150명의 병사들이 파견되면서부터다. 그 뒤 1834년 시로 승격되었다. ‘시카고’란 말은 야생 양파 혹은 마늘이라는 뜻의 인디언 언어를 당시 프랑스인들이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바다 같은 미시간호로 연결되는 시카고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남쪽은 미시시피강으로 연결되며, 북쪽은 오대호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 미시시피강은 오대호와 운하로 연결된다. 이 같은 지리적 장점때문에 시카고는 일찍부터 미국 동부의 교통 요지였다. 1848년 일리노이에서 미시간까지 운하와 철도가 만들어졌고 특히 1870년에는 대륙 횡단 철도가 개설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교통이 발달한 도시가 되었다.

시카고에도 비극은 있었다. 1871년 10월8일, 대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이틀간 활활 타오르며 시카고를 전부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화재로 시카고는 거의 재생 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수십 년간 도시 재건과 건설이 이루어지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인간의 본능에는 학습 효과가 있다. 이는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다. 시카고는 대화재로 당시 건축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목조 건축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그 뒤부터 시카고에서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대부분 돌과 철을 사용했다. 이는 시카고에게 새로운 별명을 가져다 주었다. 철근과 시멘트 그리고 돌을 사용해 넓게 그리고 높게 올라간 건물들은 20세기 초 마천루 경쟁과 맞물리며 시카고에 ‘건축물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윌리스 타워(前 시어즈 타워),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 타워, 존 핸콕 센터, Aon 센터, 마리나 시티 등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시카고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다수의 높은 빌딩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미국의 10대 고층 빌딩 중 무려 4개가 시카고에 있다.

시카고 건축물들이 하늘로만 치솟은 것은 아니다. 기능적, 디자인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현대 건축에 많은 이론적, 선험적 토대를 제공한 것도 바로 시카고 건축물들이다. 이는 미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인 루이스 설리번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시카고 건축학파’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이들은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시카고미술관을 비롯해 심포니홀, 오디토리움 빌딩, 슐레징거 마이어 백화점, 로비 하우스 등을 건축해 시카고 시내 관광 상품 중 가장 인기있는 ‘건축물 투어’를 유산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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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범죄는 저질렀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보드빌(음악과 노래 그리고 춤이 어우러진 무대극)을 공연하는 작은 극장. 무대 뒤에는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쇼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음은 환상적인 쇼를 선보일 듀엣입니다. 바로 켈리 자매!” 음악과 함께 조명이 켜지자 무대에 벨마가 등장한다. 벨마는 요염한 표정과 몸짓으로 남성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벨마 혼자다. 객석에서는 “듀엣이라더니, 왜 혼자야?” 하는 웅성거림이 들린다.

벨마는 경찰서에 수감된다. 어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동생과 남편이다. 세 사람은 어제 신나게 술자리를 가졌다. 웃고 떠들고. 벨마는 물건을 사러 갔다. 잠시 후 돌아 온 벨마는 충격을 받았다. 바로 남편과 여동생이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을 본 것이다. 분노를 참지 못한 벨마는 총으로 두 사람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리고 무대에 홀로 올라간 것이다.

폭력과 섹스 등 사람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주의가 팽배한 시카고 언론은 벨마의 사건을 대서특필한다. ‘보드빌의 스타 벨마, 남편과 여동생을 죽이다’라는 신문 제목은 독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데 더할 나위가 없었다. 벨마는 살인자지만 시카고 시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일약 ‘스타’가 된다. 언론은 이를 이용해 더욱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 낸다. 1920년대 시카고는 스타가 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대중의 관심을 얻어 유명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살인이든 폭력이든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벨마는 보드빌 스타에서 시카고 스타가 되었다.

한편 무대 위에 선 벨마를 바라보던 유난히 반짝이는 눈동자가 있다.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다. 그녀는 벨마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도 벨마처럼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에 쓰여 있다. 은근슬쩍 한 남성이 록시에게 다가온다. “벨마 켈리처럼 무대에 서고 싶군요. 그럼 나랑 이야기를 할까요? 나는 벨마의 매니저이자 이 극장 사장의 친구입니다.” 록시는 그에게 몸을 돌린다. 남성의 시선은 록시의 몸을 스캔하듯 아래위로 움직인다. 사실 이 남성은 사기꾼 백수건달이다. 그는 록시의 몸에만 관심 있다.

사기꾼과 하룻밤을 보낸 록시. 그녀 역시 내일이면 자신도 저 화려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꿈에 부푼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기꾼은 “너는 꿈도 꾸지마. 너는 춤도 안 되고 특히 음악에 소질이 없어. 정신 차리라고”라며 냉정한 말을 내뱉은 뒤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떠난다. 록시는 분노에 사로잡혀 권총을 잡는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사기꾼에게 총을 발사한다. 순식간에 록시 역시 살인자가 된 것이다. 반쯤 정신이 나간 록시는 거의 울부짖듯 비명을 지른다.

록시에게는 남편이 있다. 록시를 사랑하는 정비공 남편 에이모스(존 라일리)는 “강도가 들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총을 쐈다”고 록시의 죄를 뒤집어쓴다. 록시는 남편 에이모스를 향해 속죄의 심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내가 옳을 때나 틀릴 때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이라고. 하지만 경찰서에서 에이모스는 마음을 바꾼다. 그는 경찰이 “죽은 강도의 이름이 프레드네”라는 말을 듣자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다. 프레드는 록시가 바람을 피우는 상대. 에이모스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록시를 사랑하는 마음에 모른 척 넘어갔던 것이다. 에이모스는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한다. “내가 록시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려 했다. 사실 프레드를 죽인 것은 록시다”라고. 경찰은 록시를 체포한다. 차가운 유치장에 몸을 뉘인 록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록시가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그래서 살인까지 감수했던 벨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록시는 벨마에게 ‘당신은 나의 우상’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벨마는 록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내 속옷에는 절대 손도 대지 마”라며 벨마는 록시를 외면한다. 유치장. 하나씩 조명이 켜지면서 여성 죄수들은 자신의 사연을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한다. 모두들 가난, 사랑, 배신 등이 ‘나를 유치장으로 인도했다’고 말한다. 즉 ‘억울하고 나의 범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벨마다. 록시는 그녀들의 노래를 듣고 자신도 당당해지자고 다짐한다.

록시는 교도소만의 룰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룰은 교도소장인 마마 모튼(퀸 라티파)이 만들고 집행한다. 마마 모튼은 교도소조차 자신의 ‘비즈니스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영리한 여성. 그녀의 인생관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는 것이다. 마마는 록시에게 ‘올바른 교도소 생활의 팁’ - ‘오고 가는 뇌물 속에 편해지는 감방 생활’을 알려준다. 그녀는 공공연히 죄수들에게 뇌물을 받고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록시는 교도소 안에서 벨마의 자유로운 행동을 보고 마마 모튼의 위력을 체감하게 된다.

마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벨마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변호사 빌리 폴린(리처드 기어)이다. 그는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 승률 100%를 자랑하는 그의 변호를 받기 위해 죄수들은 돈을 들고 그의 선택을 기다린다. 언론을 통해 여론을 움직이고 그 여론을 바탕으로 배심원을 움직여 승소를 이끌어 내는 빌리는 시카고의 또 다른 스타다. “록시, 시카고에서 살인은 쇼야. 이제부터 너의 구세주는 빌리야. 그를 믿으면 돼.”

록시의 남편 에이모스가 빌리를 만난다. 에이모스는 빌리에게 록시의 변호를 부탁한다. 빌리는 5000달러를 요구한다. 에이모스는 전 재산을 다 모아도 3000달러뿐이다. 에이모스는 빌리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나머지 2000달러를 갚겠다며 록시의 변호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빌리는 마음이 조금 움직인다. 물론 빌리는 록시의 사연이 시카고 언론과 대중이 원하는 맞춤형이라 생각하고 변호를 수락한다. 그는 록시를 만나 변호 전략을 수립한다. 그것은 ‘무대에 서고 싶은 순진한 여성을 등쳐 먹은 사기꾼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 유발 작전이다.

빌리는 언론과 대중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록시의 모든 것, 즉 고향, 어린 시절, 학교, 종교, 결혼 생활 등을 각색한다. ‘시골에서 신학교를 다니며 수녀가 되려고 했던 록시가 에이모스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단지 노래와 춤이 좋아서 프레드를 만났는데 그는 록시의 꿈을 이용해 자신의 욕정만 채운 죽어도 싼 사기꾼이다’라는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는 록시에게 이를 외우도록 하고 기자들은 물론 법정에서도 록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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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질 수 없다면 악명을 떨쳐라

빌리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카고의 모든 언론은 록시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언론은 록시의 순애보 스토리, 무대를 향한 순수한 꿈, 그것을 짓밟은 사기꾼 프레드 등으로 1면을 장식했다. 시카고의 여론이 움직였다. 록시는 대중의 동정심을 사며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 여론의 주 관심사였던 벨마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 시키고의 여자들은 록시의 몸짓,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기도 했다. 록시가 법정에 출두할 때마다 할리우드 스타처럼 사진 기자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았다. 그리고 이런 대중의 관심과 여론 덕분에 빌리는 법정에서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빌리는 한마디로 록시를 이렇게 규정했다. “록시, 그녀는 살인은 했지만 범죄자는 아닙니다.”

교도소, 이제 록시는 교도소에서도 스타가 되었다. 마음껏 교도소장과 이야기하고 “마마, 난 교도소에서 나가면 바로 무대에 설 거예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해”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위치는 역전되었다. 록시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벨마가 록시에게 다가와 알은체를 한다. 벨마는 “록시, 우리가 한 무대에 서면 어떨까? 사람들은 우리 둘이 함께하는 춤과 노래를 원할 거야. 그렇지?” 이제 록시가 벨마를 무시한다. 록시는 대중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할 꿈에 부푼다.

이 무렵 시카고의 모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사건이 일어난다. 키티 백스터(루시 라우)가 남편과 불륜녀를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온다. 언론과 대중은 새로운 스타를 원한다. 그들은 록시를 잊었다. 신문 1면은 키티의 차지다. 마치 록시가 벨마를 밀어내듯 키티가 록시를 무대에서 끌어내린 것. 심지어 빌리조차 키티를 주목한다.

록시는 초조해졌다.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낸다. 록시는 “나, 임신했어요!”라고 외친 것. 물론 거짓말이다. 언론은 진실과 거짓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말초적인 스토리가 필요할 뿐이다. 다시 록시는 신문의 1면을 되찾는다. 록시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에이모스는 괴로워한다. 그는 록시를 충실하게 옥바라지했지만, 록시는 물론이고 언론과 대중은 정작 자신에게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에이모스는 독백한다. “나는 록시와 나란히 걸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네, 내 이름은 미스터 셀로판, 마치 투명한 셀로판 같구나.”

오늘은 록시의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치밀한 빌리는 록시의 모든 것을 연출한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살 수 있는 옷과 화장을 하라고 지시하지만 록시는 마치 ‘스타처럼’ 꾸미겠다며 빌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빌리는 “록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받고 싶다면 아마도 당신이 교수형을 당하면 될 거야. 당신은 1회용 스타이자, 삽시간에 잊혀지는 물거품이야. 그런 세계가 시카고야. 이 재판은 물론이고 세상 전부 모두 쇼 비즈니스일 뿐이야. 내 말을 들어.” 결국 록시는 빌리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법정, 빌리의 각본대로 움직이던 재판이 이상하게 변한다. 갑자기 벨마가 등장한다. 벨마는 록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록시를 질투한 것이다. 하지만 빌리는 화려한 언변으로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여 록시의 무죄를 이끌어낸다. 록시는 이제 화려한 스타가 될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다음날, 록시는 신문을 본다. 하지만 신문의 1면은 고사하고 작은 기사조차 록시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하루 사이에 시카고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한 여성이 남편을 죽이고 변호사마저 때린 것. 언론과 대중들은 엽기적인 이 사건에 주목한다. 그들에게는 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스타가 필요한 것이다.

교도소에서 풀려난 록시. 현실은 록시의 생각과는 정반대다. 대극장은 물론 작은 선술집 무대조차 록시를 허락하지 않는다. 실망하며 좌절한 록시. 그때 벨마가 록시를 찾는다. “록시, 우리 함께 무대에 올라가자.” 록시는 벨마가 내민 손을 잡는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시키고의 가장 화려하고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현란한 조명, 큰 무대, 꽉 찬 관객들의 환호…. 록시와 벨마는 시카고의 ‘진짜 스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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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시카고, 재즈와 마피아

‘시카고’는 2002년 롭 마셜 감독이 만든 4000만 달러짜리 뮤지컬 영화이다.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리처드 기어가 기꺼이 출연료 삭감을 감수하며 참여할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 화려한 촬영, 주옥 같은 넘버로 구성된 수작이다. 영화는 2003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영화의 원전은 모린 댈러스 왓킨스가 1926년에 쓴 연극 ‘시카고’다. 『시카고 트리뷴』의 기자인 왓킨스는 실제 벌어졌던 영화와 거의 비슷한 사건을 다룬 쿡 카운티 재판을 기본으로 대본을 완성했다.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 중에서 완성도와 대중성에서 가장 높게 인정받은 1975년에 제작된 프레드 에브와 보브 포스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다시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1920년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던 황색 언론, 관능적인 재즈 그리고 폭력과 살인까지도 이른바 ‘쇼 비즈니스’로 여겼던 시대의 욕망과 그 욕망의 소비자인 대중 심리를 조명한다. 영화는 날카로운 풍자, 위트 있는 대사, 현실과 꿈의 유려한 교차, 섹시한 몸짓과 화려함이 폭발하는 열정의 무대, 창의력 넘치면서도 완벽한 춤과 노래의 향연이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할리우드산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영화 ‘시카고’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것은 록시와 벨마 그리고 빌리를 통해 이슈를 만들어 내는 언론, 그 이슈에 주목하는 대중, 그리고 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냉혹한 풍자다. 대중들은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스타를 원한다. 그것을 만들어 내고 장사를 해야 하는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단순한 할리우드 스타가 아닌 살인자마저 포장하고 분칠해 대중 앞에 선보인다. ‘시카고’는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마저 ‘디스’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결코 우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무대, 배우, 관객 모두에게 일종의 마약 같은 ‘판타지’를 선사한다. 이 점이 ‘시카고’의 강렬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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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또 하나의 주연은 단연 음악이며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재즈와 마피아다. 신나고 경쾌한 재즈는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이처럼 미국 북부 시카고를 배경으로 재즈 뮤지컬이 탄생한 것에는 배경이 있다. 우리는 흔히 ‘재즈’ 하면 남부 뉴올리언스를 연상하지만, 시카고는 ‘시카고 재즈’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재즈의 본고장이다. 원래 재즈는 남부 루이지애나주를 중심으로 발달한 음악 장르다. 이것이 북상을 거듭해 시카고까지 올라온 계기는 제1차 세계 대전이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도 참전했다. 유럽으로 가기 위한 군인, 군수 물자를 운반하는 해군 기지가 뉴올리언스에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뉴올리언스 최대 유흥가 스토리빌을 기반으로 번창한 클럽, 극장, 윤락 업소 등이 문을 닫게 되었다. 당연히 이 유흥가에서 활동했던 재즈 음악가, 밴드들이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수가 뉴올리언스를 떠났다. 그들의 목적지는 뉴욕이었다. 이들은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뉴욕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만나는 도시에서 정착했다. 세인트루이스도 그렇고 시카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 재즈 스타 루이 암스트롱, 킹 올리버 등이 시카고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뉴올리언스, 즉 남부의 재즈를 시카고에서 녹음하고 음반 활동을 시작했다. 시장은 이들을 ‘시카고 뉴올리언스 재즈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특히 트럼펫 독주로 대표되는 루이 암스트롱과 그의 밴드 ‘핫 파이브’와 ‘핫 세븐’의 등장은 당시 밴드 위주의 재즈 연주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시카고 재즈의 특징은 뮤지션의 다양화에도 있다. 뉴올리언스 재즈가 갖고 있는 흑인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시카고로 북상하며 백인 뮤지션의 재즈 활동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들은 흑인의 감성이 녹아 있는 강한 비트 등을 자제한 서정성이 풍부한 ‘백인 재즈’를 만들어 냈다. 우리가 부르는 ‘시카고 재즈’라는 것도 엄격하게 구분하면 ‘백인 뮤지션에 의해 재해석된 재즈’인 것이다. 이후 시카고 재즈는 192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며 뉴욕 재즈의 농장 역할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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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20년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마피아와 금주법’이다. 금주법은 미국의 머니 게임을 바꾼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의 주류 산업은 미국 내에서 6위 규모.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자 자연히 이 생산과 유통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이에 마피아가 개입한 것이다. 그 당시 시카고 마피아의 보스는 알 카포네다. 뉴욕 출신의 알 카포네는 뉴욕에서 이름을 알려져 시카고 보스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시카고로 향한다. 대담함과 영리함을 갖춘 그는 시카고에서 ‘Outfit’이란 조직을 결성, 시카고 마피아를 천하 통일한다. 알 카포네는 돈 냄새를 맡는 데 천부적인 감각이 있었다. 그는 금주법 하에서 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술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했다. 원가 4달러짜리 맥주는 시장에서 20달러에 유통되었다. 알 카포네는 천문학적 돈을 벌었다. 당시 알 카포네의 재산이 약 1억500만 달러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경찰, 공무원, 국세청, 언론 등에 무차별적으로 뇌물을 뿌렸다. 그는 모든 사람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뇌물이 통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그리고 알 카포네는 뇌물이 통하지 않는 자와 경쟁 마피아에는 잔인한 살육을 감행했다.

경찰로 위장한 알 카포네의 부하들이 검문을 가장해 무려 수십 명에 달하는 상대 마피아들을 벽에 세워 놓고 그 자리에서 살해한 사건은 끔찍함과 대담함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물론 알 카포네의 전설은 10년도 지속하지 못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뉴욕 앞바다의 앨커트래즈 교도소에서 7년을 복역하고 출옥한 후 48세의 나이에 플로리다에서 사망했다.

이처럼 영화 ‘시카고’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와 시카고는 마피아, 금주법, 재즈의 전성시대와 같은 시기다. 그곳에서 화려한 욕망이 탄생하고 그 욕망은 관능의 무대를 통해 대중들에게 소비되었다. 욕망은 항상 새롭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이를 공급하는 책임은 쇼 비즈니스 업계만이 아니었다. 언론, 법, 경찰, 마피아, 쇼단 등이 공동의 목적인 ‘돈’을 위해 암묵적으로 연합하고 결별하는 것이다. 이 현란한 스타 탄생의 시스템을 영화 ‘시카고’는 이야기한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포토파크, Daum 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7호 (19.02.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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