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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스카프도 할매 스타일, 머리에 둘러 묶는 ‘바부슈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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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할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힙합 가수도 열광한 할매 패션

조선일보

구찌의 꽃무늬 스카프를 할머니처럼 곱게 둘러 묶은 미국 힙합 가수 에이셉 라키/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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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힙합 가수 에이셉 라키는 LA의 한 미술관 행사에서 독특한 스카프 패션을 선보였다. 바로 꽃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턱 끝에서 묶어주는 바부슈카(babushka) 패션이다. 이날 그의 패션은 매스컴과 소셜미디어에 오르내리며 주목 받았다. 자신도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Fukk Sleep’ 뮤직비디오에서도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나왔다.

◇ 촌스럽고 힙해서 뜬 할머니 스카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면, 찾게 되는 액세서리가 바로 스카프다. 보통은 목에 두르거나 가방에 묶어 멋을 내지만, 올해는 머리에 둘러써야 멋쟁이 소리를 들을 듯 하다. 머리에 둘러 묶는 바부슈카 패션이 유행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바부슈카는 러시아 어로 ‘할머니’를 뜻하는데, 그들이 머리에 둘러 묶은 삼각형 스카프를 의미하기도 한다. 패션계에선 할머니 스카프(Granny scarf), 헤드 스카프(Head scarf)와 같은 말로 쓰인다.

최근 몇 년 사이 구찌, 돌체앤가바나, 베르사체 등이 바부슈카 룩을 선보였다. 베트멍을 비롯해 CGDS, 골프왕 등 스트리트 브랜드는 남성 모델에게 스카프를 씌웠다. 구찌는 아예 꽃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효과를 내는 후드 액세서리를 내놨다.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건 하나, 바로 할머니 감성을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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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2018 가을/겨울 패션쇼(왼쪽)에 등장한 바부슈카와 러시아 할머니들의 바부슈카./구찌,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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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클린 케네디를 비롯해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196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도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멋을 냈다. 이들이 작고 모던한 스카프로 귀여운 여성성을 강조했다면(마치 ‘감기 조심하세요~’로 유명한 감기약 광고 속 캐릭터처럼), 할머니들은 세상의 모든 색상과 문양을 사용한 큰 스카프를 투박하게 둘러 묶어 포용성을 드러낸다. 태도가 더 자연스럽고 쿨하달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젊은 시절부터 스카프 패션을 즐겼다. 공식 석상에서는 주로 모자를 쓰고 여가를 즐길 땐 실크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묶었는데, 이는 ‘멋쟁이 여왕’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패션쇼에 초대해 화제를 모은 영국 신진 디자이너 리처드 퀸은 갖가지 문양의 스카프를 활용한 패션을 선보여 여왕에 대한 경의를 표한 바 있다.

◇ 여성 억압의 상징에서 최신 패션 트렌드로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악천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종교적인 이유로, 바른길을 사는 삶의 표식으로 스카프를 머리에 썼다. 또 집안일을 할 때는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게, 공장에서는 회전하는 기계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스카프를 써 머리를 보호했다. 현대에 와서 스카프는 멋을 내는 용도로 주로 쓰이지만, 여전히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쓴다. 그래서 머리에 쓰는 스카프는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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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2019 리조트, 베르사체 2019 프리폴, 리처드 퀸 2018 가을/겨울 패션쇼에 등장한 바부슈카 룩. 색색의 화려한 문양과 큼직한 크기로 할머니 감성을 반영했다./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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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바부슈카의 유행엔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저 촌스럽고 힙해서 받아들여진 유행일 뿐이다. ‘촌스러운 게 새로운 것’이라는 뉴트로(New-tro) 시대에 바부슈카의 유행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투박한 어글리 슈즈와 허리에 차는 패니팩 등 ‘아재 패션’이 인기를 끌었으니, 이쯤 되면 ‘할매 패션’이 등장하는 게 자연스럽다.

에이셉 라키, 프랭크 오션 등 남성 힙합 가수들이 바부슈카를 즐기는 통에 스카프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도 사라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에이셉라키는 "남자들도 여자친구의 실크 스카프를 빌려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머리 장식이 액세서리로 부상한 흐름도 바부슈카의 유행을 부추겼다. 최근 패션계에는 마스크, 발라클라바(복면), 스카프, 머리띠 등 얼굴과 머리를 가리는 장식이 유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슬림 시장을 염두에 둔 패션계의 상업적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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