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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된 청년들–조선청년동맹 해산 [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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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의 백년사진 No. 58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면서,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한 장씩 살펴봅니다. 독자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동아일보

◇ 청년 임시대회 해산 후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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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벌어지는 반(反) 이스라엘 시위 vs 100년 전 일제에 의해 해산된 조선 청년 대회

요즘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고, 그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4월 26일자 한 경제 신문에 실린 사진을 예를 들어 보면 사진설명에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에서 경찰이 기마대를 앞세워 친 팔레스타인 시위를 해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텍사스대 재학생 20여명이 연행됐다. 지난 18일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촉발된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라고 써있습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 신문에도 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청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어 소개 합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4월 26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결의 전 해산]-십 수명 경관 돌현(突顯)
별항과 같이 최창익씨가 낭독한 제의안과 설명이 마치면서 마침에 장내의 공기는 극도로 긴장되였으며 그칠 줄을 모르게 되었으며 순서를 옮기어 결의(決意)하려 할 즈음에 돌연히 기자석 뒷문으로부터 정사복의 십 수명 경관은 살기가 등등하게 달려와 송미(松尾)경부가 해산을 명령하고 한편으로 제안문을 압수하는 등 현장은 수라장으로 화하여 돌연히 참을 수 없는 무슨 소리가 나올 듯 하였으나 아래위층에 부인 틈 없이 꽉찬던 관중과 각 대표 수백명은 흥분에 쌓인 채로 헤어졌다.
이 기사가 실렸던 신문보다 며칠 전 발행된 신문(4월 22일) 지면의 기사에 따르면 이 당시 청년대회에 참가한 단체의 숫자가 무려 223개 입니다. 좌우 이념의 모든 단체들이 참가해 나라의 미래에 대한 토론과 앞으로의 실천 방법들은 논의했다고 합니다. 규모가 큰 행사다보니 행사장에 기자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년대회의 주최자 중 한 명인 최창익씨가 결의문을 발표하려는 순간, 사복을 입은 경찰과 정복을 입은 경찰 십여 명이 기자들이 있는 곳 뒤쪽 문을 통해 갑자기 들어와 유인물을 압수하면서 순식간에 행사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곤 주최자와 관중 들 수 백명이 어쩔 수 없이 해산하였군요. 보통 이런 사진에서는 행사 참석자들의 모습과 함께 경찰의 모습까지도 함께 포함되어야 사건이 잘 설명되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그런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는 공권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경찰이 물리적으로 참가자를 해산시키는 순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을테지만 현장감이 떨어져 아쉽습니다.

● 시위 사진을 찍는다는 것

신문에 실리는 사진 중에서 시위 모습이나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모습은 사진 찍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현장은 질서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 사진기자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시위는 공권력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니 경찰들이 기자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군중 심리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자들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갈등의 상황은 사진기자들이 꼭 챙기는 현장입니다.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한국의 역사에는 시위의 기록들이 많습니다. 특히 1987년 전후 시위 사진은 신문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저는 입사하기 전이라 취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당시 사진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은 매일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학생들이 던지는 돌과 화염병, 경찰이 쏘는 최루탄 가운데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취재를 했었습니다. 아침에 시위 현장으로 곧바로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시위 모습을 취재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의 필수 장비가 헬멧과 방독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방독면을 마지막으로 쓴 것은 아마 1996년 말~1997년 초 쯤 될 것 같습니다. 한총련이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교정을 점거한 연세대 사태와 노동관계법 개정에 항의한 민주노총 시위 때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후에도 헷멧을 쓰고 노사분규 현장에 가긴 했지만 최루탄은 더이상 터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현재 신문사 사진부의 캐비넷에는 헬멧과 방독면이 없습니다.

● 미국 대학생 시위 사진에서 보이는 점

동아일보

텍사스대에서 열린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경찰들. 학생들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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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생 시위 사진에서 보이는 경찰들은 두꺼운 방석복(防石服)을 입고 헬멧을 쓰고 있는데 저의 눈에는 매우 익숙한 모습입니다. 중간중간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미국 학생들의 모습도 우리나라에서 한창 시위가 많던 시절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청년들을 공권력이 진압하고 해산시킨다는 점도 특이하고 말을 탄 경찰들의 모습도 이채로와 시선이 갑니다.

미국 텍사스대 시위대와 기마 경찰대의 충돌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특이한 점을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공권력의 모습을 찍고 있는 학생들 모습입니다. 아마 실시간으로 미 전역과 전 세계가 볼 수 있는 SNS에도 저 장면들이 올라가고 있겠지요? 누군가가 지켜볼 수 있다는 있다는 점만으로도 현재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다른 나라의 역대 시위보다 덜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오늘은 100년 전 조선의 청년들이 모여 민족의 미래를 토론하던 현장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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