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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인권 공부해보니 ‘스카이캐슬’ 속 문제점 보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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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공부하며 ‘시민성’에 눈뜨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위해 앞장

매주 촛불 문화제·엽서 프로젝트 등

4개월째 활동하며 십대 의견 모아

‘스쿨 미투’는 학생 인권 문제

국제 공론화 위해 유엔에서 설명회

학생 당사자가 직접 만든 사회운동에

시민들도 서명·펀딩에 적극 동참


학생인권 활동에 뛰어든 십대들

한겨레

“우리 때는 다 맞고 컸어. 좋은 대학 가려면 휴대폰 압수당할 수도 있는 거지. 요즘 애들은 참 엄살이 심하구나.”

십대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십중팔구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맞아야 말을 잘 듣는다’ ‘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아무리 추워도 패딩 점퍼는 교칙에 어긋나니 입으면 안 된다’ ‘공부도 못하는 게 사람이냐’ 등 학교 안팎에서 들려오는 말들에 의문을 가진 십대들이 있다. 이들은 학생 인권을 공부하는 순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조례 만드는 청소년’(이하 조청) 모임의 학생들 이야기다.

“인권 공부 왜 하느냐고요?”
지난해 10월 만들어진 조청에는 경남 지역 중·고등학생 3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린 만큼 참여도가 높다. 최근 4개월 동안 ‘경남 학생인권조례 원안대로 제정하라’며 시내에서 촛불 문화제를 열고, 100인 엽서 프로젝트 등을 통해 십대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감에게 직접 전달했다.

두 차례 열린 시민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해 자신들이 왜 인권을 공부하는지, 학교 울타리 안에 왜 인권조례가 필요한지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직접 인권 워크숍을 운영한 뒤 정리해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이들이 조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교사가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라 ‘두발규제’를 검색하다가 학생인권조례를 접하게 된 경우, 학교도서관에서 동물권 관련 책을 읽은 뒤 채식을 시작하고 급식 메뉴에 문제를 느끼게 된 경우, 성 소수자 청소년으로 숨죽이며 살다가 교사의 차별·혐오 발언에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경우 등 스펙트럼이 넓다. 그만큼 아이들 생활과 학생인권조례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조청 창립 멤버로 활동 중인 홍수연씨는 올해 창원 사파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3학년 생활을 인권 공부에 ‘올인’하며 활동가로서도 활발히 움직였다. 홍씨는 인권 분야 및 청소년 교육에 대한 배움을 확장하기 위해 윤리교육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인권 공부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온 홍씨는 교실 안에서 쉽게 지워지는 존재인 성 소수자 학생 문제에 관심이 많다. “또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사들의 각종 혐오 발언으로 고통받는 성 소수자 학생들이 많다.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우습게 여기거나 욕설로 사용하는 순간, 교실 안에서 그들의 인권은 ‘가짜 인권’으로 취급된다. 학생인권 활동을 통해 더 이상 후배들이 그런 말을 안 듣게 하고 싶다.”

영상 직접 만들고 문화제 열어
안소연(창원남산고 2) 학생은 조청에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인권 관련 책을 읽은 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이야기’ 등 영상을 통해 또래 친구들과 시민들에게 조청 활동을 알리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 번화가인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청소년의 촛불’이라는 문화제를 열어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소개한다. 안양은 “연필 잡고 앉아서 하는 인권 공부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발로 뛰며 또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은 경험이 된다”며 “지난 14일 촛불 문화제에서도 처음에는 망설이던 친구들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자의 에피소드가 모여 서로 공감하는 순간들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안양은 인권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학교에 마땅한 해결 창구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기사 댓글을 보면, ‘요즘 학생들이 무슨 인권 침해를 당하느냐’고 한다. 한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만들어진 수많은 ‘학생인권 대나무숲’ 계정을 한 번이라도 봤는지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인권 침해 사례들이 익명으로 계속 올라온다. 강제로 머리를 깎이거나 휴대폰을 한 달 동안 압수당하는 등의 인권 침해를 해결해줄 대안이 없다.”

‘스카이캐슬’ 보며 구조적 문제 깨달아
인권 공부를 꾸준히 해오다 보니 티브이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청소년을 다루는 방식에도 관심이 생겼다. 최근 방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서도 청소년 인권과 입시제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김보은(창원중앙여고 3) 학생은 “학교 다니면서 입시 압박으로 늘 답답했다.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압박감을 떨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초등 시절부터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고, 중학교에 간 뒤에는 대학 잘 가는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새벽까지 공부한다. 새벽 두 시에 잠들어 네 시간 자고 일어나 열두 시간 공부하는 생활에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고 했다.

김양은 조청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속앓이가 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양이 청소년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김양은 “입시제도 속에서 나 혼자의 고민이라 생각해왔던 것들이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각을 발전시키자 학생인권조례가 십대들의 ‘인권 마지노선’이고, 반드시 원안대로 제정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유엔 가서 학생인권 발표한 청소년들
국제사회에 ‘스쿨 미투’(학내 성폭력 고발)를 알린 청소년들도 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하 청페모)은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했다. 요청은 유엔 쪽에서 왔다. 청페모가 지난해 11월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한 한국의 스쿨 미투 보고서를 본 뒤다.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스쿨 미투 운동에 정부의 제대로 된 응답이 없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왕복 경비 마련을 위한 ‘스쿨 미투, 유엔에 가다’ 서명 운동 및 펀딩에는 5천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한국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등 인권 현실을 알리기 위한 학생 당사자와 청페모 활동가가 유엔 아동권리위원들에게 직접 스쿨 미투 운동과 쟁점에 대해 설명했다.

양지혜 청페모 활동가는 “국내에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등 청소년 대상 성폭력 고발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지만 교육 당국으로부터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성폭력 가해 교사 대부분이 복직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양씨는 “유엔 담당자들이 스쿨 미투가 아동청소년 당사자가 직접 만든 사회운동이라는 점에 많은 지지를 보내줬다”며 “교실 속에서 벌어지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인권침해 사례와 관련하여, 피해자가 신뢰하고 고발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스쿨 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집회에서 스쿨 미투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청소년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학교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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