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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황종택의신온고지신] 내자불여금(來者不如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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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짐승은 슬피 울고 바다와 산은 찡그리니/ 무궁화 이 나라는 속절없이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천고의 역사를 회고해보니/ 글 배운 선비노릇하기 참으로 어렵구나(鳥獸哀鳴海嶽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구한말 꼿꼿한 선비정신의 상징 매천 황현이 일본에 국권(國權)을 뺏기자 자결에 임해 지은 ‘절명시(絶命詩)’다. 그의 죽음은 일제의 침략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힘의 한계를 깊게 느꼈고, 그로써 울분과 자괴감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쌀 한 톨의 국록(國祿)도 받은 적 없는 초야의 포의(布衣)였던 그는 망국에 대해 죽음으로써 항거했던 것이다.

매천은 맹자가 말한 인(仁)·의(義)·예(禮)·지(智), 곧 사단(四端) 가운데 일본과 관련해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하겠다. 일본을 향해선 일본인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라는 정의감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촉구했고, 우리 스스로에겐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구별해 떨쳐 일어날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실천의지를 당부한 셈이다.

오늘은 ‘2·8독립선언의 날’이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들이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학생들은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한국 청년들의 의기를 청사에 떨쳤다. 3·1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도 학생들은 물러섬 없이 불의에 항거했다. 개인의 성장을 위한 배움에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에 몸을 던져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를 개척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청춘의 가능성을 높게 여겨 “젊은 사람은 두려우니라. 어찌 장래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後生 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매천의 애국 단심(丹心)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좌전(左傳)’은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死而不朽)!” 옳은 말이다. 격동의 한반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역사의 거울’이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원장

來者不如今 : ‘장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라는 뜻.

來 올 래, 者 놈 자, 不 아니 불, 如 같을 여, 今 이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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