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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지금도 내 뒤에서 태관이가 드럼 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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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작년 12월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드러머 전태관의 이름 석 자를 꺼내자 김종진(57)은 "태관과는 잠깐 떨어져 있는 것뿐인데요"라고 했다. 옅은 미소가 걸렸던 입술은 그러나 점차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가늘게 떨렸다. "무대에 서면 태관이가 언제나처럼 드럼 스틱을 들고 저 뒤쪽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아요. 혼자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느낌이랄까…."

조선일보

23일 오후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전태관 없이 홀로 선 김종진. 그는“태관이 없어도, 제가 없어도 누군가가 봄여름가을겨울을 이어가는 게 저희 바람”이라고 했다. /오종찬 기자


어느덧 30년.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난 16일부터 서울 홍대 구름아래소극장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시작했다. 다음 달 24일까지 30회에 걸쳐 무대에 오른다.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병상에 있던 전태관과 함께 제목부터 무대 배경까지 하나하나 함께 상의하면서 준비한 공연이다. 23일 만난 김종진은 "(우린) 뮤지션이니까…, 무대 위에서 절대 감정에 치우치지 말자고 태관이와 약속했다"고 했다. 공연 수익금은 전태관의 열아홉 살 난 딸 하늘씨에게 전달된다.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 장발인 김종진과 활짝 웃고 있는 전태관이 얼굴을 맞댄 사진이 큼직하게 걸렸다. 데뷔 10주년인 1998년에 찍은 사진이다. 상당수 팬이 이 사진 앞에서 "어머" 하고 탄식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사진 앞에 붙어서서 기념 촬영을 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겠다던 약속은 처음부터 지키기 어려운 것이었다. 23일 오후 2시 공연. 객석을 향해 던지는 김종진의 농담 한마디, 너털웃음 한 번에도 전태관이 있었다. "종진이와 태관이의 지난 30년간 음악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다"면서 부른 첫 곡은 1994년 발표한 '미인'. 노래가 끝나자 김종진은 "이 노래를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부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태관이에게 '야, 우리 음악 하길 잘했다'고 했다"면서 웃었다. 공연에 한발 늦은 관객들이 몸을 숙여 자기 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는 "지정 좌석이긴 하지만 친구랑 같이 앉고 싶으면 자리를 바꿔 앉으셔도 됩니다. 친구랑 함께 가야 오래 멀리 갈 수 있거든요"라고도 했다. 무대엔 베이시스트 최원혁을 포함한 8명의 밴드 군단이 함께했다.

전태관과 김종진은 스물일곱에 동갑내기 친구로 만났다. 무대에 함께 서지 못한 지는 한참 됐다. 5년 전쯤부터 전태관은 신장암이 어깨로까지 번진 탓에 드럼 스틱을 제대로 쥐지 못했다. 드러머 유수희가 전태관의 자리를 대신 메워왔다. 그럼에도 이날 전태관의 공백은 생경하고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줄곧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노래하던 김종진은 공연이 절정을 치달을 무렵부터는 먹먹한 표정이 됐다.

이날 초대 손님인 '빛과 소금'의 장기호가 무대에서 "전태관씨만 있었으면 완벽한 봄여름가을겨울이었을 텐데"라고 입을 뗐을 때 김종진은 결국 얼굴을 구기고 눈물을 쏟았다. "시작은 둘이 했는데 결국 혼자 왔다"고 했다. 객석에 앉은 150여명의 팬도 울기 시작했다. 2013년 발표한 노래 '고장난 시계'를 부를 무렵 김종진은 한 번 더 무너졌다. "태관이와 작업한 마지막 노래다…." 마지막 노래 '브라보 마이 라이프'까지 20여곡을 부른 2시간20여분이 그렇게 한달음에 흘러갔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스쳐가듯이.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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