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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8살 사우디 여성의 용기, 세상에 작은 ‘균열’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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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거부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아 탈출

타이 당국이 체류 인정해 방콕 머무는 중

“우린 누구도 죽기 위해 소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7일 호텔방 문에 의자 쌓아두고 트위터 통해

“추방되면 살해될 것”이라며 세계 여론에 호소

사우디 여성 인권 다시 한번 세계 이목 끌 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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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활동가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많은 페미니스트 그룹이 있어요.”

18살 사우디 여성의 목숨 건 저항이 새해 초 지구촌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비비시>(BBC) 방송은 8일 “가족의 박해를 피해 국외로 도망친 사우디 여성 라하프 무함마드 쿠눈이 7일 오후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호 아래 타이 방콕 공항을 떠났다”고 전했다. 타이 출입국관리소는 “쿠눈의 타이 체류가 허가됐다. 그는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공항을 떠났다. 타이는 그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타이는 미소의 나라다. 우리는 누구도 죽기 위해 소환되길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쿠눈의 사연을 전한 외신 보도들을 보면, 그는 이슬람교를 배교했고, 그로 인해 가족에게 학대와 살해 위협을 받아왔다. 쿠눈은 5일 쿠웨이트를 거쳐 방콕으로 도망쳤다. 최종 목적지는 망명 예정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그러나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은 쿠눈이 필요한 입국 서류와 귀국 항공권을 소지하지 않았다며 입국을 불허했고, 타이 주재 사우디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여권을 압수한 뒤 공항 호텔에 억류했다.

쿠눈의 사연이 세계 언론의 이목을 잡아 끈것은 억류된 호텔 방 안에서 트위터를 통해 절박한 사연을 알리며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해 그들을 떠났다. 그들은 내 머리를 자르려고 6개월이나 방에 가뒀다”며 “송환되면 100% 감옥에 갇힐 것이고, 출옥 후 (가족이) 나를 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7일 타이 출입국 당국이 호텔 방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자 문 앞에 의자를 쌓아놓고 대치하며 “나는 유엔을 원한다”(I want UN!), “전 세계의 모든 무슬림이 나를 살해하려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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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로 먼저 망명한 쿠눈의 지인(20)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쿠눈의 말은 모두 사실”이라며 “그는 이슬람을 떠났고, 매우 엄격한 가족이 있다. 그로 인해 사촌이 ‘피를 보길 원한다. 죽이고 싶다’며 위협했다”고 전했다. 이 여성은 “쿠눈은 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라며, 사우디에서도 “여성들은 온라인을 통해 만나 서로를 지키고, 돕고 있다. 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성들에게) 돈과 집과 음식을 주는 사람을 안다. 여성들의 도망치는 것을 돕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쿠눈은 호텔 방문을 사이에 둔 목숨을 건 대치에서 승리했다. 쿠눈을 실어 보내려던 쿠웨이트 에어라인 KU-412편은 그를 태우지 못하고 방콕을 떠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의 여성 인권 문제는 다시 도마에 올랐다. <비비시>는 2017년 4월에도 24살 사우디 여성이 외국에서 망명을 시도하다 가족에 의해 송환됐다며 “이후 그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우디의 여성 인권을 옥죄는 가장 큰 악습은 ‘남성 후견인’ 제도다.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아들 같은 ‘남성 후견인’이 없으면 여성은 여행을 갈 수 없고, 학교에 입학할 수 없으며,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심지어 형기를 마치고 출옥할 때도 남성의 허가가 필요하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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