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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팩트체크] 고액 연봉 줘도 최저임금법 위반? 재계 주장 따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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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4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주휴시간과 약정휴일시간을 최저임금 산정에서 빼달라”는 경영계의 주장을 사실상 일축했다.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려면 ‘임금’을 ‘시간’으로 나눠야 하는데, ‘임금’에는 주휴·약정휴일수당을 넣고 ‘시간’에서는 빼달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월급→시급’ 계산법 명문화

새 시행령의 골자는 ‘월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는 방법’을 정해 명시한 것이다. 월급을 주는 기업들이 최저임금법을 어겼는지 따지려면 시급을 계산해봐야 한다. 그런데 월급을 시간으로 나눌 때, ‘분자’인 임금과 ‘분모’인 근로시간의 범위에 무엇을 넣고 빼느냐에 따라 환산한 시급은 크게 달라진다. 기업들 입장에선 분자는 키우고 분모를 줄여야 유리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경영계가 반발하자, 국회는 지난 5월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종류를 늘려 분자를 키워줬다.

재계의 그다음 요구는 근로시간에서 주휴시간 등을 빼 분모를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분모가 작을수록 시급이 많은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의 쟁점은 분모를 월 소정 근로시간인 174시간으로 하느냐, 주휴시간과 약정휴일시간을 더한 209시간 이상으로 하느냐였다. 현행 최저임금법령에는 유급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해야 하는지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위반을 단속할 때 주휴·약정휴일시간을 분모에 포함시켜 계산하는 행정해석을 지난 30년간 유지했다. 최저임금위원회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월 단위로 환산할 때 209시간을 기준으로 했다.

반면 법원은 174시간만 분모에 넣어, 노동부와 해석을 달리한 경우가 많았다. 노동부는 “법원의 판단과 행정해석이 달라서 생기는 혼란을 막기 위해 시행령을 고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해석을 시행령에 명문화했을 뿐, 현장에서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재계 요구대로 주휴 ‘수당’은 넣고 ‘시간’을 빼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 아니라, 법정수당인 주휴수당을 법적 임금 계산에서 빼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노동부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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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한 국무회의 논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계산 때 주휴시간을 노동시간에서 빼달라는 재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저시급 환산 방식을 일부 고친 수정안을 다시 만들어 31일 의결하기로 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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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실질 최저임금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일자 노동부는 “계산을 복잡하게 하더라도 시행령을 바꾸겠다”고 했다. 약정휴일수당·시간을 분모·분자에서 모두 뺀다는 것이다. 약정휴일은 노사가 합의한 법정휴일 외의 휴일로, 주로 토요일 4~8시간을 유급으로 처리한다. 분모와 분자에서 동시에 빼기 때문에 환산한 시급은 그대로지만 토요일 수당을 정확히 계산해야 하니 계산법은 복잡해진다.

정부는 “앞으로 노사 의견을 수렴해 약정휴일수당은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최저임금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 불씨를 남겼다. 약정휴일수당은 시급에 넣고 시간은 빼면 분자는 그대로 두고 분모만 커져 노동자에게 불리하다.

■ 고액 연봉인데 최저임금 위반?

재계는 주휴시간을 계산에서 빼자면서 “분모가 너무 커서 연봉 5000만원을 줘도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총은 최근 시행령 개정안 검토의견을 내면서 “개정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연봉 5496만원인 대기업 생산직 신입사원 ㄱ씨는 최저임금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ㄱ씨의 월급 458만원 중 기본급은 148만원이고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돈을 다 합쳐도 176만원이다. 주휴·약정휴일시간을 계산에 넣는 경우 시급이 7243원이 돼 최저임금에 못 미치지만, 계산에서 빼면 시급이 1만115원으로 올라가 최저임금법을 어기지 않은 게 된다. 기업들이 계산법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경총이 제시한 ㄱ씨가 받는 나머지 돈은 상여금과 초과수당, 성과금 등 기본급이 아닌 임금이다. 이렇게 된 것은 최저임금법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업들이 임금체계를 왜곡해놨기 때문이다. 수당·퇴직금을 줄 때 기업에 유리하도록 통상임금 액수를 낮추려고 기본급을 적게 잡는 것이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도 “이런 문제는 최저임금법령 때문이 아니라 기본급이 전체 급여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체계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처럼 연봉은 높은데 기본급이 낮아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변경해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최장 6개월까지 자율 시정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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