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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4년만의 휴전'에도 불안한 예멘…알아야 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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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 시각) 예멘 내전에서 가장 교전이 치열했던 곳으로 꼽히는 남서부 호데이다주(州)의 하늘은 내전이 시작된 4년만에 처음으로 평화롭고 조용했다.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은 유엔 중재 아래 스웨덴에서 열린 평화회담에서 호데이다주에서 휴전하고 21일 안에 동시 철군하기로 합의했다. 반군이 장악했던 호데이다항은 식량· 의약품·연료 등 예멘 필수물자의 70%가 드나드는 요충지다. 예멘의 대규모 기근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전의 향방을 가를 호데이다 휴전은 예멘 내전 종식을 위한 중요한 시금석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번 일시·국지적 휴전이 종전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도 사나를 포함한 대다수 지역은 휴전 지역에서 포함되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휴전협상이 국제사회 압박에 순식간에 진행된 만큼 회의적 시각도 크다.

잊혀진 전쟁 ‘예멘 내전’... 수면위로 떠오른 까닭은? "카슈끄지 죽음이 게임체인저"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수니파 정부군과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후티 반군의 예멘 내전은 한때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렸다. 2015년 3월 사우디의 개입으로 발발한 예멘 내전은 4년간 이어져 수만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외면했다.

시리아 내전과는 달리 전쟁의 한 축인 사우디가 서방사회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동맹국인 미국·영국 등 서구 강대국은 예멘 내전을 방치하는 것을 넘어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해 이득을 취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

2018년 12월 13일(현지 시각) 스웨덴에서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이 유엔 중재 아래 물류 요충지 호데이다 지역에서의 휴전에 협의했다. 예멘 대규모 기근 문제 해결에 희망이 보인다. /알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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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10월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사건 이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살해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가 주도한 예멘 내전에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렸다.

미국 정부는 악화된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카슈끄지 피살 이후 입장을 선회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예멘 정부군) 전투기에 대한 공중 재급유를 중단했다. 미 상원은 지난주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에 제공하는 지원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물론 이같은 강경 조치가 사우디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꼬리자르기’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21세기 인류 최대비극’으로 불리는 예멘 내전의 참상이 낱낱이 알려지며 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멘 내전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 수치는 비공식적으로 6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최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멘 인구 전체인 약 2900만명 중 절반을 넘는 1600만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끔찍한 결과도 있다.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휴전 협상은 마침내 지난 13일(현지 시각) 스웨덴에서 유엔 중재 아래 타결됐다. 예멘 정부와 후티 반군 대표단은 일주일 간의 협의 끝에 호데이다 모든 지역에서 휴전을 선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휴전선언으로 "(양측이) 수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하며 "예멘 내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휴전 절차는 어떻게 시행되나

휴전 합의안에 따라 양측은 21일 안에 호데이다항에서 1차 철군을 마쳐야 한다. 또 당장 1만5000명의 전쟁포로 교환도 시작하기로 했다. 이어 반군은 살리프항·라스이사항에서, 정부군은 호데이다 외곽에서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다. 또 양측은 예멘 남서부에 위치한 타이즈 시를 통해 인도주의적 물자(구호품, 인력 등)가 들어오는 통로도 마련하기로 했다.

유엔은 휴전 합의 사항의 시행을 감시하기 위해 예멘 현지에 휴전 감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유엔 장교들이 이끄는 합동 위원회가 휴전 및 병력 재배치를 감독한다.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자가 반군으로 흘러들어가는지도 감시할 예정이다.

스테판 두자르릭 유엔 대변인은 "휴전을 감독하는 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패트릭 캠머트가 임명됐다"며 "캠머트는 정부와 반군 대표들이 포함된 위원회의 첫 번째 회의를 19일 화상회의를 통해 소집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캠머트는 은퇴한 네덜란드 장군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이끈 경험이 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예멘 특사는 "유엔 감시단이 양측의 1단계 철군을 연말까지 마친 뒤 완전한 철군을 내년 1월 중순까지는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군이 계획대로 완료되면 호데이다부터 예멘 수도 사나까지의 통행이 자유로워진다.

또 유엔과 양측은 파탄난 예멘 경제의 개혁을 위해서도 노력할 예정이다. 우선 인도주의적 물자를 배급할 수 있는 통로 개방이 대규모 기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피스 특사는 "기근의 위험이 식량 공급 부족뿐 아니라 식량 가격과 통화 가치의 붕괴에 일부 기인하기 때문에 경제 개혁에 추가적인 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완전한 휴전’ 절반의 성과…앞으로의 전망은

그간 예멘 내전 휴전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고, 무산됐다. 지난 2015년에도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5일 휴전이 선언됐으나 4일째 되는 날 서로에게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조기 종료됐다. 2016년에는 협상 단계에서 무산됐다.

이번 휴전도 ‘일시적 봉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엔의 강력한 주도로 일단 휴전이 성사됐지만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휴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휴전 협의안에도 철군의 방법 및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등 한계점이 있다.

예멘 식량의 80%을 수입하는 최대 물류 요충지인 호데이다항에 평화가 찾아오며 대규모 기근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된 점은 이번 휴전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가장 격렬한 교전지였던 호데이다를 두고 양측이 숨을 고르는 사이 예멘의 다른 지역은 여전히 전쟁 중인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6개월동안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동맹군은 후티 반군이 장악한 물류 요충지 호데이다를 되찾기 위해 총공격을 펼쳤지만 반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도 이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피터 살리스베리 선임 분석가는 "합의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휴전이 종전 등 광범위한 평화 절차의 일부가 아님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호데이다 휴전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인도주의적 이유로 만들어진 협정에 가깝다"고 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양측에 전쟁을 재개할 동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많은 예멘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 패권을 다투는 정치적 이유뿐 아니라 예멘 내전으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디언은 "양측에겐 언제든지 휴전합의를 파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전했다.

그에 반해, 예멘 내전에 주목된 현 국제사회의 시각은 언제 다시 무관심해질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확고한 휴전 시행을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피스 유엔 특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예멘 휴전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유엔 안보리는 호데이다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인도주의적 물자의 원활한 유통을 위한 당사자 모두의 조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검토 중이다. 휴전이 지속되고 계획대로 철군이 호데이다에서 살리프와 라스이사의 다른 항구로 확대되는지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긍정적인 것은 휴전 협상이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측은 내년 1월 2차 협상에서 내전 종식을 위한 논의를 이어간다. 사나전략연구소 파레아 알무슬리미 분석가는 "내년 1월 2차 협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추측과 가정에만 의존했어야 했을 것이다. 우선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유엔 관계자는 "호데이다 휴전은 예멘 내전의 중대한 돌파구다. 양측 모두 예멘에 평화를 돌려주기 위한 여정에 헌신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우리는 휴전 지속 여부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호데이다 휴전은 앞으로 예멘 내전의 향방을 결정할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평화의 시금석"이라고 했다.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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