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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4~5세기 대가야 금동관, 출토 40년 만에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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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서 출토

철제갑옷 등 다른 가야유물 2건도
한국일보

경북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4~5세기 대가야 금동관의 모습. 신라와 백제 관모보다 단순하고 세련된 형태가 돋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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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기 대가야 시대에 제작된 금동관이 출토 40년 만에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경북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포함해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 등 가야 유물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9일 밝혔다.

금동관은 1978년 고령 지산동 32호분 석실 서남쪽에 부장된 토기 아래에서 출토됐다. 5세기 대가야시대 유물로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도금했다. 삼국시대 금동관은 주로 ‘출(出)’자 형식으로 제작했으나, 이 금동관은 중앙의 넓적한 판 위에 점선으로 X자형 문양을 교차로 새긴 독특한 양식을 보인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양으로 현대적인 감각까지 엿볼 수 있다.

황정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사는 “신라의 금동관은 작은 금판 장식이 많이 달려있고 세공 기법이 섬세해 화려한 반면, 가야의 금동관은 장식을 최소화하고 독특한 양식을 드러내 고유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금동관은 발굴 당시 완전히 납작하게 눌린 채 흙으로 덮인 상태로 발굴됐다. 일부 장식이 떨어져나갔고, 오랜 세월 땅 속에서 산화돼 녹청색 청동녹으로 덮여 부식됐다. 형태와 재질을 확인하지 못해 처음엔 단순한 금속 조각으로 판단했으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유물임을 확인하고 지금의 형태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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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금동관이 녹이 슨 상태로 출토된 모습(왼쪽)과 1981년 보존처리 전 모습. 문화재청 제공


가야시대 금동관이 출토된 사례가 매우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금동관의 희소가치는 높다. 황 연구사는 “그동안 가야 것으로 알려진 금동관이 3~4건 정도인데 출자 형식이 없고 모두 형태가 다르다”며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 때 보기 힘든 양식으로 고고학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청동칠두령은 1980~1982년 발굴 조사 때 부산 복천동 22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발굴 당시 7개의 청동방울이 달려있었다. 고조선 시대 의례에 사용된 청동방울은 팔두령, 쌍두령 등 여러 점이 확인됐으나, 삼국시대 유물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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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천동 22호분에서 출토된 청동칠두령. 7개의 청동방울이 달려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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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갑옷. 문화재청 제공


철제갑옷 일괄은 1994~1995년 시행한 부산 복천동 38호분 제5차 발굴조사 당시 출토됐다. 4세기 철제 갑옷으로 투구, 목가리개, 갑옷 등 일괄품으로 출토돼 주목된다.

이번 가야 유물의 보물 지정은 정부가 가야사 문화권 조사와 정비를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진행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3월과 9월 2회에 걸쳐 지방자치단체와 국립박물관에서 신청한 소장품 중 출토지가 명확하고 가야문화권의 특징이 반영된 유물 37건을 지정조사 추진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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