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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송민령의 뇌과학이야기]진짜일까, 가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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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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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강연장에서 “진짜 뇌과학 정보와 가짜 뇌과학 정보를 어떻게 구분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힌 적이 있다.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지 못해 답답한 심정을 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별수 있겠나. 자기 분야와 거리가 먼 전공 영역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을 많이 아는 편이고, 모를 때 물어볼 만한 사람도 주변에 더러 있는 편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야 상황이 나은 정도다.

■ 가짜 과학과 진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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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뇌과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다보면 가짜 지식에 속는 상황을 줄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지식을 쌓는 활동이 도움이 되기는 한다고 한다. 진짜 뇌과학 정보와 가짜 뇌과학 정보를 섞어두고 판별하게 했을 때, 대학에서 뇌과학 수업을 많이 들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가짜 뇌과학 지식을 더 잘 판별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지식을 쌓는 것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뇌과학 수업을 다수 들은 이들도 50%에 가까운 항목들을 여전히 잘못 판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려진 다른 정보와 정합성을 맞춰보면서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활동을 훈련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은 딱히 뇌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가짜 뇌과학에 덜 속았다고 한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정립된 지식을 배우는 학부까지의 과정과 달리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연구들과 비교해 나의 연구 성과가 어떤 면에서 새로운지, 혹시 모순되는 점은 없는지, 정합성을 맞춰보고 분석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이런 훈련은 가짜 과학을 판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고의 재료가 되는 지식은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이란 어차피 끊임없이 변하고, 나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 미리 모두 알 수 없는 만큼, 정보 자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훈련도 중·고등학교 때나 그 무렵부터 병행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당장 대학에 가서 뇌과학 수업을 들을 수도, 대학원 공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을 알아두고, 이 출처들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동아사이언스> 같은 자료도 좋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쓴 양질의 한국어 자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 가상과 현실의 경계

굳이 과학의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가짜와 진짜의 구별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짜뉴스가 문제가 되고 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다. ‘미아 애시’라는 30살의 아름다운 사진작가가 있었다. 프로필에 따르면 그녀는 영국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50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온라인 채팅을 통해 만났을 뿐이지만 진지하게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나중에야 미아 애시는 기업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와 사랑에 빠져 때로는 기업의 기밀까지 건넸던 이들은,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셈이다. 산업스파이는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에서 자동으로 친구 신청이 된 미남미녀 중에는 그런 가짜들이 많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나와 있고, 인공지능이 사람과 대화하는 기술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갈수록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짜 인물을 진짜로 오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어디 그뿐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기술도 나와 있다. 그 사람의 말이 진짜 그 사람의 말인지, 가짜 그 사람의 말인지도 따져봐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게 생겨야만,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워낙 의인화에 탁월해서 심지어 화분에게도 말을 걸며 반려식물로 여기기도 한다. 프로그램된 로봇인 줄 뻔히 알면서도, 로봇을 괴롭히라고 하거나 부수라고 하면 괜한 미안함을 느낀다.

이는 호모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쥐들은 제법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다른 쥐가 고통받고 있으면 도와주려고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쥐들은 작은 로봇이 쥐장에서 도망치려 할 때도 돕는다고 한다. 로봇이 쥐와 비슷한 사회적인 행동을 보일수록, 로봇이 쥐와 비슷하게 다른 쥐들을 도울수록, 쥐들이 로봇을 돕는 정도가 커졌다. 자연을 닮은 인공물이 많아지면서 동물이나 식물이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여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경험이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지각하고,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와 입장이 크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면 간혹 이런 격차를 느낀다. 실제로 존재하는 경험의 차이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울 때가 많은데, 여기에 각자가 경험하는 가짜까지 저마다 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가짜뉴스는 이미 많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나 치료의 목적으로 일부러 가짜를 경험하는 사람(가상현실로 치료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경우 등)도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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