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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세상읽기]정당이 기업에 배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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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인데도 차분한 분위기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국민들은 지금 어떤 이슈에 관심이 많을까. 지난 5년간 12월 중하순에 노출된 100만건의 뉴스데이터를 살펴봤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어휘는 ‘선물’ ‘나눔’ ‘성금’ ‘현금배당’ 등이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를 표현하는 어휘가 다수를 차지했고, 해마다 증가하고 있었다. 12월은 무언가를 주는 달인가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라고 했으니, 12월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달이길 바란다. 그런데 누가 주는 걸까. 주는 행위자를 찾았고, 공통분모는 기업이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기업이 실천하고 있는 이해관계자경영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 국내에서 이해관계자경영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지 20년 남짓. 기업은 시장환경의 변화로 인해 투자자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자연환경 등 이해관계가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기업의 선한 활동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가 되었다. 시장영역에서 기업의 역할이 영리추구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공공영역에서 정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경향신문

정당의 활동이 집권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많은 것들을 정당화하거나 단순화시켜선 안될 것이다. 정당도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치환경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야스차 뭉크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봤다. 이를 조장하는 3가지 요인으로 소셜미디어와 경제침체 그리고 일국적 폐쇄성을 지적했다. 포퓰리즘은 수많은 사회경제적 현안의 본질을 변방으로 밀어내고 소외시키면서 압축하고 간소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이 다수의 유권자에게 표를 받아 집권해야 하는 정당에는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생태계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당도 기업처럼, 국민의 신뢰를 얻고 공공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자 민주주의’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정당에 이해관계자란 국회의원과 국민뿐만 아니라 당직자와 보좌진, 당원, 지역주민, 직능 및 사회단체, 타 정당, 국회, 행정부, 공공기관, 지방정부, 언론, 자연환경, 외교국가 등일 것이고, 이들은 정당 운영의 중요한 참여자이고 고객이자, 정치발전과 민주주의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주주들이다. 이해관계자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가 보다 깊이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가치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 포퓰리즘으로 인해, ‘실체 없는 국민을 위한 소득 없는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합리적 대안을 찾아나가는 정당의 조력자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예컨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카카오카풀이 왜 공유가치 창출이 아닌 택시운전자 자살로 이어졌는지, KTX 탈선사고에서 왜 근원적 원인파악보다 기술결함과 사장사퇴가 더 많은 조명을 받는지, 청소년범죄의 강력처벌 여론 뒤에 소년원과 보호감찰의 운영실태는 어떤지, 사립유치원의 무책임경영이 왜 지금에야 문제가 되었는지, 낙태 찬반 이전에 어떤 종류의 낙태이든 그 수술 환경은 어떤지, 난민포용은 저출산고령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여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포퓰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정당의 내부운영도 마찬가지이다. 당원은 경선 참여 외에도, 정당의 일상적인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공동이익을 도모하는 정당민주주의는 잠자고 있는 법안들을 깨우고, 여야정쟁 중에도 사회·정치적으로 이미 합의가 된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민주적 기초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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