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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박걸순 교수 "단재의 임시정부 부정은 이승만과 독립노선 차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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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절대독립론 배치된 이승만 위임통치 청원 강력 비판

민중 해방 '조선혁명선언' 기초한 1923년 아나키스트 성장

뉴시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 (사진=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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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가 내년이면 수립 100주년을 맞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부정한 것은 임정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李承晩·1875~1965)과 독립노선 차이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와 3·1운동및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는 지난 14일 오후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단재 신채호 자료의 발굴과 해석'을 주제로 '2018 단재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단재 신채호의 사상과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란 주제 발표에서 "초기 임정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단재가 임정을 부정한 것은 임정의 존재나 필요성까지 부정한 것이 아니다"며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들의 미국 의존적인 외교론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재가 임정을 부정한 것은 자신의 절대독립론과 정면으로 배치된, 위임통치 청원을 한 이승만과의 독립운동 노선 차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임정 초기 임시의정원 전원위원회 위원장과 충청도 의원으로 선임된 단재가 후에 임정의 노선과 활동을 비판한 것은 임정의 존재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운동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해석이다.

박 교수는 "단재가 의원에서 해임된 것은 1919년 8월18일이고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9월19일"이라며 "단재가 임정과 결별한 원인은 이승만의 대통령 선출 결과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독립운동 노선의 차이"라고 밝혔다.

이승만은 1919년 2월 '장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다는 전제 아래 일본의 통치로부터 한국을 해방해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는 조치'를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단재는 이 위임통치 청원을 매국·매족행위로 규정하고 이승만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박 교수는 단재의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 활동과 관련해서는 "단재의 아나키즘을 민족주의와 대비하거나 분리해 평가해선 안 되고, 심지어 대립적 관점이나 민족주의로부터의 이탈로 해석하는 것은 교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단재는 3·1운동을 계기로 민중 해방을 표방한 아나키즘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류자명·이회영·정현규·백정기와 이을규·정규 형제 등 한국과 이석회 등 중국 아나키스트들과의 교유를 통해 비밀항일결사단체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한 1923년에 단재는 자임할 정도의 아나키스트로 성장했다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박 교수는 "단재는 임종하는 순간까지 아나키즘 사상을 바탕으로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을 신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ksw6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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