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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결국 결혼하고 출산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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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노승후]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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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시 읽고 있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읽기에만 몰입하며 끝을 냈지만, 다시금 소설 속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을 음미하고 싶어서 천천히 읽고 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주인공은 직장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집에서 어린 딸을 키우면서 재택근무를 한다. 하원한 아이와 공원에서 잠시 노는 장면에서는 흡사 나와 일치되는 기분마저 느꼈다.

소설 속에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 없이 결혼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중년의 독신 남성 멘시키라는 인물도 나온다. 이 두 사람은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삶의 한 형태다.

육아나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Double income, No Kids'라는 의미의 딩크족. 이에 더 나아가 결혼 자체도 부담스러운 요즘 젊은이들의 독신주의.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사회·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나도 결혼을 후회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더 여유 있고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무한히 행복하지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것들과 경제적인 부담은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소설 속에서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독신 남자인 멘시키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세상에서 뭔가를 달성한다 한들, 아무리 사업에 성공하고 자산을 일군다 한들, 저는 결국 한 세트의 유전자를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아 그것을 다음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편의적이고 과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런 실용적 기능을 제외하고 남는 것은 그저 흙덩이 같은 것뿐이라고 말이죠."

이 부분을 읽자마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남, 여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건은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의무가 아닐까? 내가 어떤 삶을 살든 최소한 나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기본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태어난 아이가 나처럼 불행하게 인생을 살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고.

물론 태어난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행복과 불행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부모의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의 가능성을 미리 막는 건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설 속 멘시키의 말은 어쩌면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역시 결혼한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아이 없이 아내와 반려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아이를 낳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소회를 소설 속에 담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해보기도 했다.

올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드디어(?) 1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아이 한 명도 낳지 않았다는 말이다. 두 사람이 두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명도 이 세상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출산을 기피한다는 증거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대한민국 인구는 제로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저출산의 폐해를 몸소 실감하고 있다. 젊은 인구의 지속적인 공급 없이는 그 나라의 미래는 우울하기만 하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아이를 낳으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그에 고마움을 느꼈다면 그 기회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의무는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 혼자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칼럼니스트 노승후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TX조선, 셀트리온 등에서 주식, 외환 등을 담당했으며 지금은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경험해 본 아빠로서 강연, 방송, 칼럼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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