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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그시절 함께 춤추고 노래했던 ‘딴따라답게’ 성만이를 보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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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조성만 열사 30주기’ 작은 음악회

‘가민연’ 김현순씨 등 지인들 모여

성미산마을극장서…문정현 신부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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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하자면, 조성만 열사를 위한 추모 공연이 아니라 지금껏 그를 잊지 못한 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통과의례 같은 자리인 셈이죠.”

오는 15일 오후 4시 서울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통일열사 조성만 30주기-사랑 때문이다>의 공동기획자인 김현순씨는 ‘조성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춤과 노래’라는 부제에 더 방점을 뒀다.

“성만이가 떠난 1988년 5월15일 그날은 여러가지로 잊혀지지 않아요. 명동성당 청년단체의 하나인 가톨릭민속연구회(가민연) 회장을 맡고 있던 성만이는 그날 ‘광주민중항쟁 계승 마구달리기’ 행사에 앞서 회원들과 함께 풍물을 치며 길놀이를 했거든요. 혼자 교육관 옥상으로 올라가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날 ‘5·18 비디오’를 복사하고 있다가 비보를 전해들었던 순간이 지금도 또렷해요.”

김씨는 “그날 주주로 후원한 새신문 <한겨레> 창간호를 반갑게 받아봤는데, 이튿날 1면에서 성만이의 투신 사진을 보게 될 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83년 ‘가민연’ 창립 때부터 조 열사와 함께 활동했고, 86년 전국 성당의 문화단체 연대기구인 가톨릭문화운동협의회(가문협)의 창립 간사를 거쳐 88년에는 대표를 맡고 있었다. “성만이는 전주 해성고를 나와 재수 시절부터 가민연에 참여했고 마침 집도 같은 봉천동이어서, 저를 누나로 따랐어요. ‘그날 거사’ 보름 전쯤에 저를 찾아왔어요. ‘사람답게 살기가 버겁다’며 힘들어 했는데, 노래극 테이프 제작작업이 늦어져서 더 얘기를 나누지 못했어요. 뒤늦게 남겨진 일기를 보니, 그때가 결단을 하던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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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조성만 30주기 추모사업을 해오면서, 김씨처럼 여전히 ‘성만이’를 혼자 떠나보낸 미안함·죄책감을 안고 있는 지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됐다고 했다. “거창한 규모가 아니라 조용히 소박하게 우리만의 이별 의식이 필요하다, ‘딴따라답게’ 춤추고 노래하며 떠나보내자는, 뜻이 일치했어요.”

실제로 공연장인 성미산마을극장은 200석이 채 안된다. 그 시절 ‘가민연’ 회원들과, 연습실을 나누어 쓴 인연으로 ‘조 열사’와 자주 어울렸던 노래패 ‘신새벽’ 회원도 참여했다. 김만곤·박영준·이대훈·이순이씨 등이 그들이다. 구자우, 아침이슬(노래패), 윤선애, 이창학, 해웃음(노래패), 가문협 등의 동지들도 합세한다.

전주 시절부터 사제를 꿈꿨던 조 열사의 멘토인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는 “성만이가 나의 스승”이라며 지금도 방에 그의 사진을 두고 기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문정현 신부를 비롯해 후배 김찬호(광주트라우마센터 연구기획팀장), 김정미씨가 이야기 손님으로 나와 ‘조성만과 나’를 들려줄 예정이다. 조 열사의 부모도 참석할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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