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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멕시코 ‘공무원 급여 삭감’ 놓고 대통령-대법원 정면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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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좌파 대통령, 자기 월급 절반 깎고

“모든 공무원 급여는 대통령보다 낮게”

대법원 “사법부 통제”…‘효력정지’ 결정

전국판사협회는 사상 첫 대규모 시위

정부는 법원 결정 뒤집으려 정식 소송



“멕시코 대법원장보다 (보수를) 더 많이 받는 공직자는 도널드 트럼프 뿐이다.”(오브라도르 대통령)

“급여 삭감 불가능 원칙은 특권이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는 수단 중 하나다.”(전국판사협회)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중도좌파 국가재건운동 소속)과 연방대법원이 ‘공무원 급여 삭감안’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대법원이 의회가 통과시킨 정부 법안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집권당이 정부를 대신해 정식 소송을 내면서 행정부와 사법부가 날카롭게 맞선 형국이다.

멕시코의 영어 신문 <멕시코 뉴스 데일리>는 11일 “연방법원 판사들이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추진하는 판사 급여 삭감과 사법부 개입 시도를 비난하며 사상 처음으로 공개적인 항의 집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전국판사협회가 조직한 전날 집회에는 멕시코 전역 25개주에서 1400여명의 판사가 직접 참여하거나 뜻을 함께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올여름 선거에서 89년만의 정권 교체를 이루며 지난 1일 취임한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의 만연한 부패와 불평등, 폭력을 없애겠다며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취임 직후 대통령 전용기를 비롯해 연방정부 항공기들을 매각하고 공무원 급여를 삭감하는 공공부문의 긴축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급여를 전임 보수당 정권 시절보다 60%나 깎은 월 10만8000페소(약 603만원)로 낮추고 다른 모든 공무원의 월급이 이보다 높지 않게 삭감하는 ‘연방공무원 보수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향판들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법관들의 전국 순회 근무도 추진 중이다. 그러자 대법원이 지난 주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이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집권 여당인 국가재건운동은 11일 대법원 결정에 불복해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0일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이건 원칙의 문제다. 그래서 정부에 변화를 가져왔고,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며 공무원 급여 조정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멕시코 판사들은 한달에 60만페소(약 3350만원)를 받는다. 판사와 고위 공무원들이 받는 급여는 지나치게 높고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법원이 공무원 보수법을 뒤집기 전, 오브라도르는 판사들의 고액 급여를 “멕시코의 부패 수준과 맞먹는 것”이라고 비교하기도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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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기자회견 발언이 알려지자 멕시코 사법부는 “대통령이 국가의 독립기구를 통제하려 한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전국판사협회의 루이스 베가 라미레스 회장은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급여 조정안의 진짜 의도는 우리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약화시키고 법치주의를 침해하려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직 개인적 이득을 노려 판사들을 음해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경고도 했다. 멕시코 대법원도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연방법원 판사가 60만 페소의 월급을 받는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하고, 연방정부 공무원 임금표까지 첨부했다. 표를 보면, 대법원 판사 11명의 월급은 약 27만페소(약 1500만원), 연봉으로는 323만페소(1억80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멕시코 뉴스 데일리>는 “대법원 판사들은 보너스와 위험수당도 받고 있으며, 이를 합치면 연간 급여가 423만페소(약 2억3600만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도 판사들을 비롯해 많은 공무원들이 공개되지 않은 부수입을 올린다고 주장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7년 국가별 부패 지수를 보면, 멕시코는 100점 만점에 29점,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35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최하위권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와 별개로, 2009년 판사 급여를 낮춘 현행법이 시행되기 전에 임명된 대법원 판사 2명은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 덕분에 694만페소(약 3억8770만원)의 고액연봉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장의 연봉은 26만7000달러(약 3억1270만원)이라고 덧붙였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멕시코 대법원 판사들보다 유일하게 높은 급여를 받는다고 비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봉은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선 뒤 대통령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0월에 올해 2분기 급여를 전미중소기업협회에 기부하는 등 취임 이후 급여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고 <시엔비시>(CNBC) 방송이 보도한 바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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