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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英 브렉시트 표결 전격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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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지난달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도출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에 대한 의회 표결을 전격 연기했다. 이에 따라 브렉시트 진행 방향은 물론 메이 총리 거취까지 불투명해지면서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BBC방송과 블룸버그는 1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영국 하원의 승인 투표가 미뤄질 것이라고 내각 소식통을 인용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투표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하원에서 큰 표차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투표에서 합의안이 통과되려면 639명 중 과반인 최소 320명에게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자유민주당, 민주연합당(DUP) 등 야당이 일제히 반대 의사를 밝힌 데다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 역시 이른바 '안전장치(backstop)' 방안에 불만을 품고 합의안 부결을 준비 중이다. 백스톱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북아일랜드를 EU의 관세 동맹 안에 남겨 놓는 방안이다. 이를 두고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영국 주권을 훼손한다면서 반대하고 있다.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이 연기됐다는 소식에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했다. 불확실성이 증폭된 탓이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는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0.66% 내린 1.26579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2017년 6월 이후 18개월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재 보수당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은 316석이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보수당 의원 100명 이상이 공개적으로 합의문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투표에서 메이 총리가 가져온 브렉시트 합의안은 과반은커녕 100표 이상 큰 표차로 패배를 기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합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찬성은 200표에 못 미치는 반면 반대는 400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이날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국민투표를 통해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을 일방적으로 번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한 점도 이번 의회 투표 연기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브렉시트 반대파에 힘을 실어주는 것과 동시에 영국 내에서 브렉시트에 관한 제2국민투표 실시 주장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BBC는 ECJ 판결이 일부 의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판결은 스코틀랜드 법원이 ECJ에 의뢰한 유권해석 결과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스코틀랜드 의회 일부 의원들이 법원에 일방적 번복이 가능한지를 물었고, 스코틀랜드 법원은 ECJ로 다시 공을 넘겼다. 블룸버그는 메이 총리가 오는 13일 EU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브뤼셀을 방문한 자리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살리기 위해 EU에 새로운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ECJ 판결에도 EU 방침은 강경하다. EU는 영국과 타결한 브렉시트 합의문이 '유일하게 가능한 최선의 합의'라고 강조하면서 영국과 재협상은 없다고 거듭 쐐기를 박았다. 미나 안드리바 EU 대변인은 이날 "영국이 내년 3월 29일 EU를 떠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EU)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ECJ 판결이 재협상에 대한 EU의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당 소속 스티브 베이커 하원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의미 있는 표결이 연기됐다"며 "이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이 패배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후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더 이상 영국은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를 갖고 있지 않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코빈 대표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은 너무 형편없어서 결국 표결을 미루는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졌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총리실 대변인은 예정대로 승인 투표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바클레이 브렉시트부 장관과 콰시 크워텡 브렉시트부 부장관은 의회 표결이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이 총리가 주요 각료들을 대상으로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소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메이 총리는 그동안 의회의 벽을 넘기 위해 하원 의원들을 만나 지지를 당부하는 한편 언론 인터뷰와 지역 방문을 통해 합의안 통과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려왔다. 히 메이 총리는 합의안 표결을 앞두고 지난 4일부터 하원에서 토론을 벌여왔다. 하지만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거세게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6년 6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약 2년5개월 만에 영국과 EU는 지난달 13일 브렉시트 협상 초안을 작성했다. 영국이 2019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더라도 2020년 말까지는 전환기간으로, EU 관세동맹 내에 잔류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영국은 올해 제정한 EU 탈퇴법에서 의회의 통제권 강화를 위해 비준 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 협상한 결과에 대해 하원 승인 투표를 거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당초 11일 승인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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