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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과학을읽다]지문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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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은 일란성쌍둥이도 서로 다릅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는 정보여서 현대사회에서는 정부가 그 정보를 관리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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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지문(指紋, Finger print)'은 손가락 끝마디에 있는 곡선이 만드는 무늬입니다. 손가락 끝부분 피부의 땀샘이 위로 자라면서 만들어지는 물결무늬 모양이 지문이 됩니다.

지문의 융선은 태아일 때 엄마의 뱃속에서 형성되는데 피부에 작용하는 불특정한 모든 힘에 의해 모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문은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쌍둥이도 5% 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나머지 95%는 지문이 같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지문이 같을 확률은 870억분의 1 정도입니다. 지금 지구의 인구가 76억명 정도니 지구상에 지문이 같은 사람은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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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의 융선은 태아일 때 엄마의 뱃속에서 형성되는데 피부에 작용하는 불특정한 모든 힘에 의해 모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갖게 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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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은 임신 10주~16주 사이에 만들어져 평생 동안 모양이 바뀌지 않습니다. 손끝이 다치거나 화상을 입어도 상처가 아물면 원래의 지문이 다시 나옵니다. 지문은 피부 표면에 있는 것 같지만 표피 아래의 진피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피부의 껍질이 벗겨지는 정도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모양이 변형되거나 없어지는 경우는 진피에 상처가 생겨 상처가 회복되지 않을 때라고 합니다. 지문은 유전의 영향을 받으며, 인종에 따라 어떤 무늬가 많거나 적을 수 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사건 현장에 지문이 남아 있으면 사건 관련자를 특정할 수 있어 수사 진행이 수월해집니다. 1892년 아르헨티나의 경찰 후안 부세티치가 문에 묻은 지문을 채취해 두 아들을 살해한 어머니를 검거한 이후, 1901년 영국, 1902년 미국 경찰이 지문체계를 채택합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실패한 1968년 1·21 사건이 지문체계를 채택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해 말, 남파간첩 등을 색출하겠다는 명분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면서 지문채취를 의무화합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전부 지문을 찍고, 이 지문 정보는 정부가 관리하면서 민원서류 발급이나 범죄자의 신원 확인 등에 이용합니다.

요즘에는 과학수사 분야는 물론 스마트폰 본인인증 등 다방면에서 개인 식별을 위해 지문 인식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문이 없어 이런 기술이 소용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2007년 미국의 공항에서 지문이 없는 스위스 국적의 여성이 입국을 거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여성은 '무지문증(ADG, Adermatoglyophia)'에 걸린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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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인증은 스마트폰 본인인증 등 요즘 널리 사용되는 일반화된 개인인증 방법입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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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이틴 스위스 바젤 의대 교수는 이 여성을 추적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녀 집안의 16명의 방계가족 중 지문이 있는 사람은 7명, 그녀처럼 지문이 없는 사람이 9명이나 됐습니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이틴 교수는 무지문증은 유전적 원인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에 몰두합니다.

이틴 교수는 엘리 스프레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와 함께 스위스 여성 가족의 무지문증 환자들과 정상인의 DNA를 비교·분석합니다. 오랜 연구 끝에 연구진은 희귀 DNA 전사체 데이터에서 피부에서만 발현되는 'SMARCAD1'이란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무지문증 환자들은 모두 돌연변이 SMARCAD1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정상인들은 정상적인 SMARCAD1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연구진은 "SMARCAD1가 태아 발생 초기에 피부세포가 차곡차곡 접혀져 주름이 형성되는 것을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주장했습니다.

이틴 교수는 무지문증을 '입국지연병(Immigration delay disease)'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지문 날인을 요구하는 나라에 들어갈 때 애를 먹는다는 이유로 붙인 별칭이지요. 이런 무지문증 환자는 우리나라에도 10여 명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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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문증인 사람의 손가락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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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에게도 지문이 있는데 사람에게 지문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을까요? 동물 중에는 개나 고양이는 없지만 영장류인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그리고 코알라에게는 지문이 있습니다. 지문이 잘 인식되지 않을 때는 손가락에 땀이 많아서 그렇다는데 지문이 전혀 없는 무지문증인 사람은 손가락에 땀구멍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불편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 동물들에게 지문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니나 야블론스키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교수는 2006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Skin(피부)'에서 손가락, 발가락 끝의 지문은 영장류가 나무를 잘 타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피부표면의 미세한 굴곡이 나무를 잡을 때 미끄러짐을 방지한다는 설명이지요.

그런데 3년 뒤인 2009년 3월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지문은 미끄럼 방지 기능보다 촉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한 구조라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특히 섬세한 질감을 느낄 때 지문이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에는 이 촉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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