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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선관위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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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41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협상 기득권 거대양당 의원들 미적

더불어민주당 ‘병립형-연동형 혼합’ ‘지역구 득표 반영’ 주장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역별로 이해관계 달라 당론 못 모아

정개특위 자문위원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원 정수 증원”

문재인 대통령 “선관위 안이 가장 합리적” 일관되게 주장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방식 보완하면 연동형이 가장 합리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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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 틀의 합의가 이뤄져도 세부적인 협상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디테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바로 악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안을 다루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본격 협상을 앞두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심상정 위원장)는 각계 전문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언론계 몫으로 저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문위원 중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그리고 저까지 네 사람이 지난 11월28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네 사람은 대체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하고, 국회의원 숫자는 350~360명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현행 제도의 수혜자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과감하게 양보해야 한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특별히 찬성이나 반대 발언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오전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향해 “자유한국당도 원칙적으로 동감과 공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사무총장과 김종민 정개특위 간사는 별도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동형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직자, 보좌관들이 말하는 두 당 내부의 실제 기류는 좀 다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현행 병립형과 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야 한다”거나 “정당투표 득표율뿐만 아니라 지역구 득표도 반영해야 한다”고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민주당이 이길 것으로 보고 어떻게든 다른 정당에 돌아가는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고 민주당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쪽은 좀 더 심각합니다. 수도권 의원들은 양대 정당에 유리한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지만, 영남권 의원들은 현행 소선구제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같은 당 안에서도 의원들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당론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고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상승하면서 “선거제도 개편을 꼭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난 6·13 지방선거와 같은 참패가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냥 현행 제도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의원 정수를 350~360명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두 당 의원들은 “국민이 받아들이겠느냐”며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대한 불신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의원정수를 늘리면 결국 ‘제3정당’ ‘제4정당’ 등 소수 정당 의석만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또 의원 숫자가 늘어나면 의원 각자에게 돌아가는 수당이나 보좌진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처럼 선거구제 개편과 의원 정수 증원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결국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을 전제로 기존 제도를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낙관론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몇 가지 쟁점을 분명히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왜 바꿔야 할까요? 어떤 제도로 바꿔야 할까요? 개편이 과연 가능할까요? 선거제도를 바꾼다면 어떤 보완 장치가 필요할까요?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제가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11월28일 오후 정개특위 자문위원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비례대표제는 사회의 균열과 갈등, 그리고 사회의 다원적 이익과 의사를 대표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표성을 구현하는 데 분명히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히 다당제를 창출한다.

촛불시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요구가 커지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의 정당체제는 대표적인 두 개의 역사적, 정치적 균열 축, 즉 민족문제와 성장이냐 분배냐를 둘러싼 것으로 기본적으로 양당체제를 지배적인 형태로 한다. 한국 사회는 충분히 다원적인 사회 구조를 창출했지만, 그것들이 정치적으로 표현되고 조직되는 것은 억압돼왔다.

촛불시위는 그동안 대표되지 못한 사회집단, 다원적 사회 구조에 부응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대표 체계의 문제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촛불시위 이후 광범하게 억압되거나 제한돼온 다원적 대표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제 개혁에 대한 요구는 분명하다.

한국의 양당체제는 그 자체가 사회적 다원성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기득이익화한 결과 사회의 저변으로부터 제기되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지 못한다. 나아가 그동안 보수-진보, 좌-우의 균열을 대표해온 양당체제의 조건들, 특히 탈냉전이라는 환경 변화는 양당제를 떠받쳐온 기반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또 성장, 분배, 노동과 고용 문제를 둘러싼 영역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조건에서 탈양극화를 반영하는 정당체제를 필요로 한다. 즉 다당제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분열적이고 소모적인 지역주의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정이 불가피하다. 사실 이러한 선거제도 개정의 필요성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제기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선거제도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이제는 논의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2016년 후반 전국을 가득 채운 촛불집회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정치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소망의 발현이었다. 새로운 정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번의 정개특위는 이러한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국민의 염원을 제도 개정을 통해 실현시켜야 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

1987년 민주화 당시 우리 국민의 목표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30년 전 민주화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의 뜻이 구현된 것이었다. 이제 민주화 30년을 보내면서 보다 나은 민주주의, 한 단계 더 성숙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30년 전 우리 국민이 원한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로 모아졌다면, 이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견해가 모두 평등하게 대표될 수 있도록 (make every vote count)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정개특위 자문위원들은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도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선거제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지역주의 완화와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2:1 범위에서 정함.

-권역별로 배분의석을 확정하여 각 의석할당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함.

-정당별 배분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비례대표 명부순위(지역구 후보자의 동시 입후보 가능)에 따라 권역별 당선인으로 결정함.

[제안배경]

-대폭적인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선거구를 현행 전국구에서 권역별로 개선하는 의견을 제안하였음.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간, 시·도별 인구수와 의석수간 불비례성을 극복하여 투표가치의 평등과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하였음.

-특히,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지역구 후보자가 동시에 입후보할 수 있게 하여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였음.

△(지역구 후보자의 비례대표선거 동시 입후보)

-같은 시·도 안의 지역구 후보자에 한하여 2명 이상을 비례대표 후보자명부의 같은 순위에 배치할 수 있게 하고, 지역구에서 낙선할 경우 상대 득표율이 가장 높은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함.

-동시 입후보자 득표수가 자신이 입후보한 지역구 유효투표 총수의 3%에 미달하거나 해당 시·도에서 소속정당의 지역구 당선인 수가 그 시·도 전체 지역구 수의 1/5 이상인 경우 당선될 수 없도록 함.

→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도 적용

[제안배경]

-시·도 단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입후보를 허용하여 정치적 불리함을 안고 열세지역에 출마하여 최선을 다한 경우, 비록 지역구에 당선되지는 못 하더라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정당 내에서도 열세지역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경쟁력을 높이고 정당의 지역편중 현상을 완화하고자 함.

쉽게 말해서 전국 6개 권역별로 의석을 나눈 뒤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한다는 것입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거의 비슷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각 정당 득표율과 국회에서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 비율이 상당히 근접하기 때문에 국회의 대표성과 비례성이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문제는 국회의원 숫자입니다. 중앙선관위는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2대1’로 하기 위해서는 지역구를 200개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고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구를 현행 253개에서 53개나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내용의 선거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선거법 개정안에 국회의원들이 찬성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의원 정수 증원의 비난을 자신들이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비현실적인 숫자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앙선관위는 두고두고 여야 의원들에게 비현실적인 제안을 했다고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선거제도 개편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350~360명으로 늘리되 지역구 숫자를 현행 253개로 묶고 비례대표 의석만 늘려서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방안입니다.

정개특위 자문위원회 위원들이 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350~36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쉽게 의견을 모은 것도 바로 이러한 정치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연동형과 병립형을 적절히 섞어서 나누는 방식이나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지역구 득표율을 반영하는 방식은 안 되는 것일까요?

안 됩니다. 연동형이면 연동형이고 병립형이면 병립형이지 이를 적절히 나누자는 것은 원칙 없는 ‘섞어찌개’에 불과합니다.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지역구 득표율을 반영하자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후보에 대한 투표와 정당에 대한 투표가 뒤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안이 옳다면 독일이 왜 그런 제도를 채택하지 않았겠습니까? 정당 지지도가 높아서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낼 것으로 예상하는 민주당이 자신들의 의석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 수도권 의원들이 주장하는 중대선거구제는 어떨까요?

중대선거구제는 금품 부패 정치를 조장하는 제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중대선거구제는 유신 독재를 했던 박정희 정권이 도입해서 전두환 정권까지 유지했던 제도입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도 한때 중대선거구제를 하다가 폐해가 너무 심각해서 소선거구제로 돌아왔습니다.

따라서 지역구 소선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늘리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중앙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이 현재로써는 최선입니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는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선구제를 기본으로 하고 비례대표제를 조금 얹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1988년 13대 선거를 앞두고 도입됐습니다. 비례대표(전국구) 의석 배분을 13대부터 16대까지는 각 정당의 지역구 후보 득표로 했습니다. 이 방식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17대부터는 정당투표를 따로 해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13대 이후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5석 이상 의석을 확보한 정당의 정당별 의석수는 이렇습니다.



13대 : 민정 125, 평민 70, 통일민주 59, 신민주공화 35

14대 : 민자 149, 민주 97, 통일국민 31

15대 : 신한국 139, 국민회의 79, 자민련 50, 통합민주 15

16대 : 한나라 133, 새천년민주 115, 자민련 17

17대 : 열린우리 152, 한나라 121, 민주노동 10, 새천년민주 9

18대 : 한나라 153, 통합민주 81, 자유선진 18, 친박연대 14, 민주노동 5

19대 : 새누리 152, 민주통합 127, 통합진보 13, 자유선진 5

20대 : 더불어민주 123, 새누리 122, 국민의당 38, 정의 6



얼핏 봐도 제3정당, 제4정당이 매번 상당한 의석을 확보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대양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은 이미 다당제를 선호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거대양당이 아닌데도 국회교섭단체 기준인 20석 이상 의석을 확보한 경우는 13대 통일민주, 신민주공화, 14대 통일국민, 15대 자민련, 20대 국민의당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당한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지속한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당과 야당이라는 양당체제를 강요하는 대통령제의 흡입력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당이 합쳐지고 분열하는 정계개편이 일상화되어 있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처럼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다당제 수요를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 제도화하고 정당 정치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고지선은 아닙니다. 어떠한 정치제도라도 허점을 안고 있습니다. 제도와 함께 문화를 바꿔 나가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비례대표 의원이 많이 늘어나는데, 비례대표 의원들을 과연 어떻게 선출하고 관리해 나갈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및 명부 작성에 당원과 일반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방안, 비례대표 의원들이 다음 선거에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고 비례대표 연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학자나 전문가 중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칠 수 있는 작은 문제점을 핑계로 정치개혁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비례대표제를 아예 없애고 한 선거구에서 3~4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입니다. 어느 나라든 정치제도는 그 나라 고유의 역사성과 경로 의존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국회의원 비례대표제는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 전망은 어떨까요? 국회 정개특위에서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 권력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대양당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순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정치 환경도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12월 중순 원내대표 선거, 내년 2~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당분간 선거제도 당론을 모으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내년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 발 정계개편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치 일정상 선거제도 개편이 한없이 뒤로 미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몇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불확실성입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연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될 것 같습니다. 1988년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로 바꿀 때 바로 그랬듯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제도 변경의 가능성은 커질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의 역설입니다.

국민의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 안목은 이제 거대양당의 기득권 수호 논리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습니다. 거대양당 국회의원들이 온갖 궤변을 늘어놓아도 그 주장이 진짜로 정치개혁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의석을 늘리기 위한 얄팍한 계산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개혁 의지도 희망적인 요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2월 중앙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 발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습니다. 2015년 3월10일에 열린 ‘중앙선관위 선거제도 개편안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표는 이런 내용의 축사를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혁신을 이뤄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대결 구도를 부추기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아 왔습니다.

2월 임시국회를 통해 국회 정치개혁특위 구성 결의안이 처리된 만큼, 여야는 하루바삐 국회 정개특위를 구성하여 중앙선관위의 의견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만큼은 여야 모두 복잡한 이해관계를 떠나 선거제도 발전과 정치혁신만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1일 국회 시정연설 직전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 환담에서 “(2015년 제출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이 당리당략을 떠나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를 기본으로 논의하면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야당 대표 시절 생각과 대통령이 된 뒤의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일관성 있는 태도는 선거제도 개편에 미적거리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의원정수 증원 문제도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의원정수 증원을 반대하는 여론을 설득하려면 국회의원 당사자들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원정수 증원에 찬성 의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선거제도 개편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도 선거제도 개편을 마냥 반대만 해서는 절대 유리하지 않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수 혁신과 합리적 보수로의 변화를 입증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강하게 반대하면 그 자체로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2015년 중앙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이 나왔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사이에선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에선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한국일보>가 의원들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했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89.4%가 찬성했고, 새누리당 의원의 65.3%가 반대했습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선거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기존 규칙으로 치러졌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야권분열이라는 엄청나게 유리한 정치 환경에서도 122석 원내 2당으로 주저앉았습니다. 민주당이 123석으로 1당을 차지했습니다.

만약 새누리당이 중앙선관위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였다면 새누리당이 1당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의 정당 득표율이 33.5%로 가장 높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25.5%, 국민의당은 26.7%였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입니다. 명분을 외면하고 실리만 추구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국민은 절대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치인과 정당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국민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국민은 정치인과 정당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습니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과감하게 수용하고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정당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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