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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워라밸` 기업 늘고 있지만 아직 갈 길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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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 문화에서 벗어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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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67] 생경했다. 보통의 회사들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이 쭉 늘어서 있는데 이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사무실 한 가운데 강연장이 있고 그 위로는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자유로운 복장으로 개방형 좌석에서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었다. 창가를 바라보고 앉거나 출입문을 향해 앉는 등 제각각 나름의 좋은 위치를 선점한 듯 보였다.

투명 유리창에 둘러싸인 회의실이 두어 개 보였고 커피와 음료는 누구나 편하게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사무실 한켠에 널찍한 마룻바닥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이 곳에서 요가 강습이나 각종 강연이 진행된다. 사물함과 옷장이 마련돼 있어 개인 짐은 이곳에 보관하고 출퇴근하면 된다.

놀라운 점은 이직률인데 회사에 따르면 이직률이 1%도 안 된다. 지난해 육아휴직 후 복귀율은 100%에 달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거나,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등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는 시차출퇴근제 덕분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 등을 부모가 직접 데려다줄 수 있으니 맞벌이 부부의 큰 장애물 하나를 회사가 걷어준 셈이다. 종합제지회사 유한킴벌리 이야기다.

2년여 전 유튜브코리아 본사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9시 미팅이었는데 회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직원은 멋쩍었는지 "출퇴근이 자유로워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유치원 등에 보내고 출근하는 직원이 상당하다고 귀띔했다. 커피, 음료 등을 마실 수 있는 다용도실에는 아기의자가 놓여 있었고, 실제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직원도 종종 있다고 했다. 회사 다용도실에 아기 의자라니, 미팅이 끝나고 나서도 하루 종일 생각났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 문화에서 벗어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업무효율성을 높이고 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게 된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직무몰입도가 14% 늘고 사내소통지수가 약 30% 상승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금융권도 동참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 9월부터 직원의 업무 특성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사전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시차출퇴근제(회사가 제시하는 근로시간 유형 중 원하는 유형을 선택) △자율출퇴근제(오전 6시~오후 1시 사이 자유롭게 출근해 8시간 근무) △탄력근무제(주당 평균 40시간 근로를 조건으로 일일 근로시간을 스스로 조정) 등 세 가지 근무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 7주간 해당 유형에 맞춰 출퇴근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이 일과 생활의 조화를 찾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프로그램 시행 취지다. 직원들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사회가, 회사가 나서서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게 돕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07명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에 관해 설문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유연근무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도입 기업은 15.3%에 그쳤다. 미국의 '시차출퇴근제' 도입 기업 비율이 81%(2016년 기준)에 달하는 것에 견주어 현저히 낮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말하는 내게 신문사도 육아휴직을 갈 수 있냐고 반문한 취재원이 있었다. 매출 1조원이 넘는 업계 1위 그룹이었다. 여성 임원이 있느냐고 물으니 '여장부' 임원이 하나 있다고 했다. 미혼이란다. '워라밸'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기사화되는 것도, 그 기업을 방문해 생경한 느낌을 갖는 것도 실은 너무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직원은 출산휴가만 쓰고 돌아오거나 어쩌면 돌아오지 못했을 그 기업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쩐지 씁쓸했다.

[권한울 중소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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