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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월급으로 야채빵 3~4개 살 수 있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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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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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39] 얼마 전 평양을 다녀온 조선족 친구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새빵(야채빵)이 맛있었어. 조선돈(북한돈)으로 천 원인데, 꽤 먹을 만 했어."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치는 대답이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다시 물었다. "아니, 요즘 평양이 엄청 변했다고 하던데 겨우 빵이야?"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분위기가 몇십 년 전 중국 같아."

올해 들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언론을 통해 북한의 모습이 자주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변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완공된 여명거리를 중심으로 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선 평양의 모습은 놀라운 변화로 평가됐으며, 한쪽에서는 '그동안 북한을 너무 몰랐다'고 반성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왜 북한의 지난 10년간의 변화에 이토록 감탄을 쏟아내며 '놀라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일까. 북한이 놀라울 만큼 변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를 아예 안 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동안 익히 보고 들어왔던 북한은 낙후하고 가난하며 3대에 이어지는 세습으로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량 탈북이 시작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된 북한의 일상은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권력 강화를 위해 혈육마저 살해하는 독재자의 행위를 국제사회는 지탄했다. 이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 대다수가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이미지다.

요즘 북한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은 '변화'다. 일부 사람들은 마치 북한이 불변하는 도시였던 것처럼 평양의 거리나 사람들의 옷차림,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이 변했다고 강조한다. 물론 분명히 북한은 변했다. 화려하게 변모된 평양의 거리를 차치하고서라도 퇴근 후 맥주를 즐기는 평양 시민들, 누구나 들고 다니는 휴대폰, 화려해진 패션 트렌드가 확연히 눈에 띈다. 그러나 이쯤에서 북한에 대해 단순히 변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무엇이 어떻게 변했고, 누구에 의해 변했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느끼는 놀라운 북한의 변화가 중국인의 눈에는 특별하지 않게 보였을까?

앞에서 얘기한 대로 남새빵의 가격은 북한 화폐로 천원이다. 우리나라 화폐로는 대략 150원으로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의 노동자 노임(월급)이 보통 2500~5000원인 것을 감안해보면 비싸도 너무 비싸다(최근 기업소별로 수당이나 월급 차이가 있어 평균적으로 계산한 수치임). 결국 일반 노동자의 월 구매력은 빵 3~4개 수준이다.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은 많이 변했다.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을 통해 자본주의 생활방식을 터득하며 자생하고 있다. 전기가 없으면 태양열 에너지로 대체하고 있고, 수돗물이 안 나오면 자비(自費)로 수도관 공사를 진행하거나 물뽐프(물펌프)를 설치한다. 월급으론 감당할 수 없는 각종 명목의 사회적 부담을 수행하는 대신 사적 경제활동의 암묵적인 허가를 얻어낸다. 게다가 당국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새 세대들은 외부 세계를 갈망하고 한류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예나 지금이나 월급으로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 부담은 점점 가중된다. 정부나 당에 대해 불만을 얘기할 수 없으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다. 당국은 여전히 선물정치로 특정 세력만 챙기고, 그들은 권력과 자원을 독점한다. 어떤 것이 진짜 북한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둘 다 북한의 모습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가지고 있던 북한의 이미지와 현재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하나의 대상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들은 북한이 놀랍게 변했다기보다는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우리의 기대가 만들어 낸 결과일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 어느 한쪽만을 보려는 편견이 이런 북한을 만들기도 하고, 저런 북한을 만들기도 한다.

무심코 던진 중국인 친구의 말이 어쩌면 현재의 북한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 수도 있다. 한 달치 월급으로 빵 3~4개밖에 살 수 없는 북한, 수십 년 전 중국 같은 북한, 정부는 정부대로, 주민은 주민대로 각자도생하며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는 우리 한반도의 반쪽 북한 말이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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