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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워터게이트’ 닉슨 숨통 조인 백악관 녹음 테이프… 트럼프는 피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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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1973년 10월 19일 닉슨, 제출 명령 거부…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한국일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기 하루 전인 1973년 10월19일,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가운데) 특별검사가 워싱턴DC 연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워터게이트 수사가 한창이던 1973년 10월19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9개의 테이프(tapes)를 제출하라”는 특별검사와 상원 특별조사위원회, 법원의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그리고는 ‘테이프 내용을 검토ㆍ요약해서 내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아치볼드 콕스 특검은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격노한 닉슨은 이튿날(10월20일ㆍ토요일) 법무장관 엘리엇 리처드슨에게 “콕스 특검을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리처드슨은 이를 거부하고 자진 사임했다. 법무부 부장관 윌리엄 러클샤우스도 리처드슨과 같은 길을 선택했다. 결국 법무부 서열 3위였던 차관보 로버트 보크가 닉슨의 명령을 따랐고, 콕스 특검은 이날 밤 해임됐다. 단 하루 만에 법무장관과 부장관, 특검 등 3명이 한꺼번에 물러난 이른바 ‘토요일 밤의 대학살’이었다.

닉슨의 이런 무리수는 3개월 전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이 “대통령 집무실엔 모든 대화가 자동 녹음되는 비밀 장치가 있다”고 폭탄 선언을 한 탓이다. 이 때부터 모든 관심이 ‘백악관 녹음 테이프’로 쏠린 건 당연했다. 백악관의 편집본 제출, 일부 기록 삭제 의혹 제기 등으로 이어지던 공방은 1974년 7월24일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테이프 64개 원본 제출’ 명령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그리고 8월5일에는 닉슨이 1972년 6월 “연방수사국(FBI)에 워터게이트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을 가하라”고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사법방해 행위가 생생히 담긴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었던 것이다. 탄핵 직전까지 몰린 닉슨은 결국 나흘 만인 8월9일 사임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24시간 녹음 체계는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대통령 보호를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제 발등을 찍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6월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폭로에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는 우리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없기를 바라야 할 것”이라면서 ‘테이프’의 존재를 암시했다. 이후 “녹음 테이프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자칫하면 닉슨처럼 트럼프 집무실에 자동 녹음장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미국 백악관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 대화 녹음 테이프의 존재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트럼프 정부 난맥상에 대한 내부 폭로가 잇따르자, 백악관은 대통령동(웨스트윙ㆍwest wing) 등 보안구역 내 개인 휴대폰 반입을 일절 불허키로 했다. 누군가의 ‘몰래 녹음’을 막기 위한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가장 큰 고민거리는 녹음 테이프일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한국일보

리처드 닉슨(왼쪽) 미국 대통령이 1974년 8월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부인 팻 닉슨 여사와 함께 백악관 직원들을 상대로 사임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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