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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책과 삶]일제강점기 신여성 26살에 요절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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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

최영숙 지음

가갸날 | 184쪽 | 1만1000원

경향신문

근대의 여명과 식민지배의 어둠이 교차했던 20세기 초 조선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로운 시공간이다.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기는 해도, 그 시기를 살았던 일부 엘리트들의 삶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국제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1906년에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1932년에 사망한 최영숙의 삶이 그렇다.

최영숙은 여주공립보통학교와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6세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그는 놀랍게도 1926년 9월 스웨덴으로 건너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는다. 학위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인도에 들러 간디의 연설을 들었다.

견결한 신념의 사회주의자이자 일어, 중국어,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국제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가혹했다. 부친의 사업이 실패해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하는 곳은 없었다. 그는 서대문 밖에서 배추, 감자, 미나리, 콩나물을 팔았다. 임신한 몸으로 과중한 일을 하면서 영양실조에 시달렸던 그는 결국 스물여섯의 나이에 요절했다.

사후에 나온 기사들은 외국에서 공부한 여성을 바라보는 1930년대 조선 사회의 천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문·잡지의 부고 기사는 최영숙의 사회적 행적보다는 인도인과의 연애 이야기로 도배됐다. 월간지 ‘별건곤’은 심지어 기자가 저승행 열차에 탄 고인을 가상 인터뷰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는 최영숙의 시, 일기, 신문·잡지 기고문과 대담과 인터뷰를 비롯한 당시 언론 기사를 모은 책이다. 출판사의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 중 세 번째로 출간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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